"저희도 사업 내용에 AI를 추가해야 할까요?" 최근 몇 달 사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반복해서 꺼내는 이 질문에는 공통된 배경이 있습니다. 회사 소개서와 IR 자료 어디를 봐도 'AI 기반', 'AI 솔루션', 'AI 도입'이라는 문구가 한 줄씩 들어가 있고, 정작 AI가 제품의 핵심 기능으로 구현된 곳보다 유행어처럼 끼워 넣은 곳이 훨씬 많습니다. 비즈니스 컨설턴트 이복연은 최근 Outstanding 기고에서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해답을 찾기 전에 질문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처음에는 약간 까다로운 말처럼 들립니다. "잘못된 질문"이라는 표현이 현장의 고민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말이 AI를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고민의 진짜 출발점을 되묻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IR 자료에 'AI'를 넣을수록 회사들이 닮아갑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타트업 소개서와 IR 자료에서 'AI'라는 단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빠진 경우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SaaS 솔루션이든, 커머스 플랫폼이든, 콘텐츠 서비스든 한 줄쯤은 AI를 언급합니다.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 'AI 자동화', 'AI 강화 고객 경험' — 표현은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합니다.
이 현상 뒤에는 여러 힘이 작용합니다. 투자자들이 AI를 묻기 때문에, 경쟁사가 AI를 내세우기 때문에, 채용 공고에 AI 경험이 빠지지 않기 때문에.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과는 비슷하게 수렴합니다. 'AI를 빼면 뒤처진 것처럼 보일 것 같다'는 불안이 소개서 안으로 파고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회사들의 소개서가 점점 서로를 닮아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어떤 문제를 누구를 위해 풀고 있는지, 왜 이 팀이어야 하는지 — 이런 내용이 희미해지고, 'AI 활용'이라는 표현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 사업의 차별점을 읽어야 하는데, 모두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으면 정작 차이를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AI라는 단어를 넣었는데 오히려 회사의 고유한 색깔이 지워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복연의 글은 이 지점을 이렇게 짚습니다. "AI를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도구 선택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도구를 먼저 고르려면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문제보다 도구가 앞서면, 사업의 방향이 도구의 유행을 따라가게 됩니다.
'일단 붙이고 채워 넣으면 된다'는 반론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도 분명히 있습니다. 가장 강한 반론은 현실론입니다. "AI를 먼저 표방하고 나중에 채워 넣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숫자가 이 반론을 어느 정도 뒷받침합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글로벌 AI 관련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전체 벤처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었고, AI 레이블 없이는 초기 미팅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다는 말이 실무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시장이 AI를 원한다면, 생존 전략으로 레이블을 먼저 붙이는 것이 완전히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반론도 있습니다. "레이블이 방향을 이끈다"는 것입니다. AI라고 내세운 뒤 실제로 그 역량을 쌓아간 팀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선언하고 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실행을 만들어낸다는 경험담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이 작동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AI를 표방한 뒤 실제로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한 '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왜 AI로 풀겠다는 이유 말입니다. 그 이유가 없으면 팀은 표현과 실제 업무 사이의 간극에서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초기 미팅에서 AI 레이블이 문을 열어줄 수 있지만, 두 번째 미팅에서 투자자는 그 간극을 묻습니다. 그때 "아직 구현 중입니다"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은 처음의 이득보다 훨씬 큰 비용을 만들기도 합니다.
1인 사업자에게 이 질문은 다른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스타트업의 IR 전략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1인 사업자나 소규모 팀에게 이 구조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AI를 써야 하나"가 아니라 "AI 도구를 제대로 쓰고 있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아닌가"라는 막연한 불안으로. 그 불안이 가이드나 강의, 뉴스레터 구독으로 이어지고, 어느 순간 정작 해야 할 고객 작업보다 AI 도구를 탐색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됩니다.
리소스가 한정된 사람일수록 이 비용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새로운 도구 하나를 실제로 쓸 수 있을 만큼 익히는 데 드는 시간이, 그 도구로 절약할 수 있는 시간보다 클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질문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AI를 써야 하나"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반복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작업이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구체적인 답이 나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좁아집니다. 그 반복 작업을 줄이는 방법이 있는지, 있다면 AI 도구가 실용적으로 작동하는지, 학습에 드는 시간이 얻는 효과보다 작은지.
순서가 이렇게 되면 AI 도구 선택은 훨씬 쉬워집니다. 무엇이든 써봐야 한다는 압박 대신, 지금 당장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한 가지 작업에 집중해서 탐색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탐색 범위를 하나로 좁히는 것 — 이번 달은 초안 작성에만 써보겠다는 식으로. 범위가 좁을수록 학습 비용도 작고, 효과를 확인하기도 쉽습니다.
한 가지 더 구분할 것이 있습니다. AI 도구가 내가 잘하는 것을 더 빠르게 만드는지, 아니면 내가 잘 못하는 것을 대신 처리하는지입니다. 전자라면 기존 강점이 더 선명해집니다. 후자는 그 영역에서 역량이 쌓이기 어렵고, 도구가 달라지거나 사라질 때 함께 흔들리기 쉽습니다.
완벽하게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데 오히려 자신의 사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행하는 포맷, 유행하는 키워드, 유행하는 도구를 쫓다가 어느 날 내 브랜드가 어떤 색깔인지를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오랫동안 남아 있는 사업은 유행에 민감했던 곳보다 자신이 풀려는 문제에 집요했던 곳인 경우가 많습니다.
"AI를 써야 하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 질문에 먼저 답하려 할수록, 정작 내가 어디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묻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 — 이복연의 지적은 그 순서를 바꾸자는 제안입니다. 문제가 먼저 선명해지면, 도구는 그다음에 고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