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한 투자 분석가가 저지 마이크스(Jersey Mike's)의 IPO 서류를 열었습니다. 고기를 썰고 소스를 바르는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 미국 전역 3,000개 매장을 가진 그 체인의 공시 문서입니다. 농담 삼아 확인했다고 TechCrunch 기자 줄리 보트는 썼습니다. "설마 샌드위치 가게에야 AI가 필요 없겠지"라는 가벼운 기대와 함께. 그러나 있었습니다. AI 관련 언급이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서류에 버젓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장면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지금 사업계획서나 IR 자료에 AI를 언급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IPO 서류에서 AI가 늘어난 속도
저지 마이크스는 1956년 뉴저지에서 시작한 샌드위치 체인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외식 프랜차이즈가 상장을 앞두고 제출한 서류에 AI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업계에서 화제가 된 건, 이 회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됐기 때문입니다.
S&P 500 기업들의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을 기준으로 보면, AI를 언급한 기업 비율은 2022년 20%대에서 2024년 이후 50%를 넘어섰습니다. 같은 기간 AI 관련 단어가 포함된 기업의 주가 밸류에이션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높은 멀티플을 받는다는 분석도 잇따랐습니다. 그 인과 관계가 어떻든, 시장에서 AI 언급이 프리미엄과 연결된다는 인식이 만들어졌고, 그 인식이 공시 서류 작성 방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샌드위치 가게의 AI 공시는 이 흐름의 단면입니다. AI와 직접 관련 없는 업종에서도 서류에 AI 관련 항목을 넣어야 한다는 압박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이 현상이 처음은 아닙니다
비슷한 장면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17~2018년, 미국의 한 음료 회사가 사명에 "블록체인"을 넣자 주가가 하루 만에 200% 올랐습니다. 회사의 사업 내용은 바뀐 게 없었습니다. 2000년 전후로는 회사명에 ".com"만 붙여도 벤처 자금이 몰렸습니다. 특정 단어 자체가 프리미엄의 표시처럼 기능하는 시기는 반복됩니다.
다만 AI 워싱(AI washing)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앞선 사례와 구분되는 점이 있습니다. AI는 블록체인이나 닷컴 도메인과 달리 실제로 기업 운영에 폭넓게 적용 가능한 도구입니다. 외식업이라도 발주 예측, 인력 스케줄링, 고객 응대 등에 AI 도구를 쓸 수 있고, 실제로 쓰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류에 AI를 언급하는 것이 진짜 활용인지 외피만 빌린 것인지를 겉으로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반대 입장에서 보면, AI를 공시 서류에 포함하는 것이 과대 포장의 증거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SEC는 최근 AI와 관련된 리스크 요인을 공시에 기재하도록 기업에 지침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현재 AI를 쓰지 않더라도 이 기술이 자사 사업 모델에 어떤 위험 또는 기회가 되는지를 투자자에게 알리는 것은 오히려 정직한 의사소통이라는 논리도 성립합니다. 샌드위치 체인이 AI를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기회주의적 끼워 넣기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지 마이크스 사례가 환기하는 것은 언급의 실질보다 언급의 압박입니다. "넣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넣을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앞서 움직이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 그 환경이 샌드위치 가게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창업자 서류에서 이 압박이 닿는 곳
한국에서도 같은 압박은 이미 현장에 들어와 있습니다. 스타트업 투자 심사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나요"라는 항목이 기본으로 들어온 지 2~3년이 됐습니다. 정부 지원 사업 서류에도 AI 도입 계획을 기술하는 란이 생겼습니다. 피치덱 피드백에서 "AI 활용 방안이 약하다"는 코멘트를 받았다는 초기 창업자들의 이야기도 드물지 않습니다.
1인 사업자나 소규모 스튜디오 운영자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딜레마입니다. AI를 실제로 쓰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서류에 AI 관련 내용이 없으면 심사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여기서 점검할 지점은 하나입니다. 지금 내 피치덱이나 사업계획서에 AI를 적는다면, 그건 어느 쪽인가입니다. 실제 운영에서 AI를 쓰고 있고 그 역할을 설명하는 것인가,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넣는 것인가.
미국 기업 공시 서류를 분석하는 방식 중에 이런 접근이 있습니다. AI 관련 언급의 위치, 빈도, 그리고 그 언급에 연결된 수치의 유무를 보면 기업의 AI 활용이 실질인지 수식인지를 상당 부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투자자와 심사자 중 일부는 이미 같은 방식으로 IR 자료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AI를 쓴다"는 문장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를 봅니다.
서류에서 AI를 지울 수 없다면
시장 분위기와 제도적 흐름을 감안하면 AI 언급을 아예 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넣는 방식에는 선택이 있습니다.
구체성이 차이를 만듭니다. "AI를 활용하여 업무 효율을 높입니다"는 아무 정보를 담지 않습니다. "고객 응대 초안 생성에 특정 API를 사용하며, 처리 시간이 1건당 12분에서 4분으로 줄었습니다"는 다릅니다. 전자는 분위기에 맞춘 문장이고, 후자는 운영 사실의 기록입니다.
AI 언급이 범람하는 시기에 구체적인 수치와 한정된 사용 사례가 오히려 읽는 사람의 눈에 남습니다. 지금 내 서류에 AI 관련 문장이 있다면, 그 문장 옆에 세 가지를 붙일 수 있는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도구를 어떤 업무에 썼는지, 그 전후의 차이를 수치로 낼 수 있는지, 지금도 실제로 그렇게 운영하고 있는지. 이 세 가지가 없는 AI 언급은 샌드위치 가게 IPO 서류와 같은 선상에 놓입니다.
저지 마이크스가 AI를 서류에 넣은 이유가 무엇이든, 그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신호로 읽습니다. 내 서류도 누군가에게는 같은 방식으로 읽힙니다. AI 워싱이 전방위로 퍼진 환경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것만이 서류를 신뢰 가능하게 만들고, 그 신뢰가 피칭의 실질적인 무게를 결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