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리지리서치그룹(KRG)이 코스피·코스닥 상장 AI 관련 기업 80개사의 2023~2025년 실적을 집계한 보고서를 발표한 날, 숫자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AI 관련 상장사 합산 당기순이익이 2년 만에 25조 원에서 81조 원으로 세 배 넘게 뛰었다는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81조 원 가운데 76조 원이 반도체·소재부품장비(소부장) 단 한 업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머지 업종이 2년간 만들어낸 순이익을 다 합쳐도 5조 원에 미치지 못합니다. 의료 AI는 매출이 늘었음에도 2025년 626억 원 적자를 냈고, 피지컬 AI·로봇 분야는 2024년 순이익이 2023년 대비 90% 가까이 줄었다가 겨우 회복했습니다. "AI 산업에서 돈을 버는 곳"이라는 표현과 "AI 서비스를 만들어 돈을 버는 곳"은 지금 이 시점에서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AI 붐의 수익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있나

KRG 분석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수익의 집중도입니다. 반도체·소부장 분야의 당기순이익은 2023년 21조 9051억 원에서 2025년 76조 836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이 업종의 순이익률도 10.5%에서 22.6%로 올랐습니다. 단순히 매출이 늘어서가 아니라, 같은 매출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국방·방산 AI는 이 보고서에서 두 번째로 건강한 성장세를 보인 업종입니다. 매출이 9조 원에서 13조 5281억 원, 순이익은 8808억 원에서 1조 6795억 원으로 연평균 38.4% 성장했습니다. 3년 전에 "생성형 AI가 들어갈 자리"를 꼽으라고 했다면 군사 분야를 먼저 언급한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 수치는 지금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LLM·에이전트 분야는 매출이 늘었고 순이익률은 15~20%대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KRG는 이 분야가 여전히 공공 프로젝트·구축형 사업·개념검증(PoC)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고 봤습니다. 미국의 API 기반 반복 매출 구조와는 다른 형태입니다. 프로젝트를 납품하고 끝나는 구조와 구독료가 매달 들어오는 구조는 순이익률이 같아 보여도 기업 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AI로 돈 번다"는 말의 양면

이 데이터를 보는 시각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한쪽에서는 이것이 초기 시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봅니다. 인터넷 산업 초기에도 통신 인프라와 하드웨어 회사가 먼저 이익을 냈고, 소프트웨어·플랫폼 수익은 몇 년 뒤에 따라왔습니다. 지금 반도체가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은 AI가 아직 인프라 구축 단계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의료 AI와 로봇이 지금 적자를 내는 것도 이 맥락에서는 선행 투자로 읽힙니다.

반대편 시각도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중심 AI 서비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이미 구조적으로 밀렸다는 주장입니다.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딥마인드가 API를 통해 세계 개발자 생태계를 장악하는 동안, 국내 LLM 기업들이 공공 프로젝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시차가 아닌 경로 차이라는 시각입니다. 데이터센터·클라우드·SW 분야의 2025년 순이익이 2024년 정점(1조 6543억 원) 대비 오히려 줄어든 것도 이 논거를 뒷받침합니다. GPU 확보와 인프라 투자는 계속 확대되는데 이익은 줄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 수치만 놓고 보면, AI 붐에서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벌고 있는 곳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이 숫자가 1인 사업자·솔로 PM에게 뜻하는 것

이 보고서를 읽으며 떠오른 것은 파이낸스 사고법에서 강조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돈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디로 흘러가는가. 거창한 투자 결정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시간과 역량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데도 같은 질문이 작동합니다.

우선 "AI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팔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 국내 LLM·에이전트 분야의 수익 구조를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KRG의 진단, 즉 "반복 매출 구조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한 시장 평가가 아닙니다. 프로젝트형으로 AI 서비스를 납품하면 일회성 수익이 생기지만, 그 서비스가 다음 달에도 수익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익률이 아니라 이익의 반복성을 따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AI 도구에 비용을 지출할 때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는 습관이 판단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 1인 사업자가 월 10만~50만 원을 AI 구독료로 쓴다면, 그 돈의 상당 부분은 GPU를 소유한 기업들에게 넘어갑니다. AI 이익의 94%가 반도체·소부장에 집중됐다는 수치는 내가 낸 구독료가 어디서 이익으로 전환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흐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어느 도구를 선택하고, 얼마를 쓸지 결정하는 기준에 미세하게 차이를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의료 AI와 로봇이 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위험 신호이기도 하고 공백이기도 합니다. 아직 수익화되지 않은 분야에는 자리가 있습니다. 단, 이 분야에서 빠른 수익을 기대하고 진입하는 것과, 3~5년의 적자를 감수할 자본 계획 없이 진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선택입니다.

80개사의 순이익이 2년 만에 세 배를 넘겼다는 뉴스는 확실히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이익 분포를 들여다보면, AI 붐에서 돈을 버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가장 확실한 수익이 발생하는 자리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이 사실이 지금 내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는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지금 어느 층위에 서 있는지를 알고 다음 수를 두는 것과, 알지 못한 채 두는 것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