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코딩이 등장하면서 하루 만에 앱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AI가 코딩을 대신하고, 글쓰기를 도와주고, 분석 보고서까지 써줍니다. 만드는 능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공실률 50%인 건물을 100채 짓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출판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글쓰기를 도와주면서 책을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바이브 출판'이라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나왔습니다. 무작정 양산하면서 정작 빠뜨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 질문이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라는 직무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PM이 하는 일
프로덕트 매니저는 제품의 전략 수립부터 기획, 개발, 출시, 성장까지 전 과정을 책임집니다. 흔히 '제품의 CEO'라고 불리는데, 이 표현이 꽤 정확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일들을 합니다. 제품의 장기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단계별 목표, 즉 로드맵을 짭니다. 기능을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유저 스토리를 작성해서 개발팀에 명확한 명세서PRD, Product Requirements Document를 전달합니다. 사용자 피드백, 시장 트렌드, 제품 데이터를 분석해서 개선 방향을 찾습니다. 그리고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의사결정을 이끕니다.
PM이 늘 머릿속에 들고 다니는 세 가지 축이 있습니다. 사용자가 쓸 수 있는가Usability,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Feasibility, 사업적으로 성립하는가Viability.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저울질하는 게 PM의 일상입니다.
PM의 핵심 판단 기준 3축
비슷한 직무와 헷갈리기 쉬운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PM은 제품의 전략과 비전에 집중합니다. PO(프로덕트 오너)는 애자일 조직에서 백로그 우선순위와 성과를 책임지고, 서비스 기획자는 기능 구현과 사용자 흐름 설계에 집중합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일정·비용·리스크를 관리하죠.
그런데 AI가 PM의 일을 상당 부분 해줍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데이터 분석?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합니다. 시장 조사? 몇 분이면 경쟁사 분석 보고서가 나옵니다. PRD 초안 작성? 프롬프트 한 번이면 그럴듯한 문서가 뚝딱 만들어집니다. 유저 스토리도, A/B 테스트 설계도 AI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민연기 저자의 『증강인간』에 나오는 프레임으로 보면, 이건 워크 1.0에서 워크 3.0으로의 전환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숙련된 노동이 곧 역량이던 시대(워크 1.0)에서, 데이터에서 정보를 추출하는 지식 노동자의 시대(워크 2.0)로 넘어갔고, 이제 AI가 기술과 지식을 모두 대신하는 시대(워크 3.0)에 들어섰습니다. 역량의 세 축—기술Skill, 지식Knowledge, 태도Attitude—가운데 둘이 대체되고 있는 겁니다.
역량의 세 축
PM도 예외가 아닙니다. PM의 주요 능력이라고 불리던 것들—데이터 분석, 기술적 이해, UX 설계—을 AI가 상당 부분 수행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PM에게 남는 것은?
『증강인간』에 나오는 백설공주의 요술거울 이야기가 있습니다. 계모가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라고 물으니 거울이 답했죠. 그런데 거울은 '예쁘다'는 말의 의미를 스스로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과거 데이터의 편견을 기준 삼아 답을 내놓았을 뿐입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도 거울은 맞든 틀리든 답을 말했고,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계모는 거울을 깨뜨렸습니다.
PM의 상황도 이와 닮았습니다. AI에게 "이 기능을 넣어야 할까?"라고 물으면 데이터 기반으로 그럴듯한 답이 나옵니다. "경쟁사는 어떤 전략을 쓰고 있어?"라고 물으면 정리된 분석이 나옵니다. 그런데 AI는 "이 제품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지 못합니다.
출판 현장에서 매일 확인하는 사실도 같습니다. AI가 아무리 빠르게 콘텐츠를 생성해도, 주제를 선정하고 독자를 설정하며 책의 방향을 설계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책은 저자의 지식을 정리해서 인쇄한 종이 덩어리가 아니라, 독자의 삶에 들어가 지성을 채우는 역할을 하거든요. 그 건물에 무엇을 채우고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PM에게 남는 건 결국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가치를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정말 사용자에게 의미가 있는지, 이 제품이 시장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판단하는 일이죠. 사용성, 구현 가능성, 사업성이라는 세 축을 저울질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특히 그 세 가지가 서로 충돌할 때—사용자는 원하지만 기술적으로 어렵고, 사업적으로도 불확실한 경우—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결정하는 건 AI가 하지 못합니다.
둘째, 끊임없이 배우는 태도입니다. 시장은 계속 변합니다. 어제의 데이터가 오늘의 의사결정에 유효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AI는 과거 데이터에 갇혀 있지만, 사람은 아직 데이터가 되지 않은 변화의 조짐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PM이 현장을 직접 보고, 사용자를 만나고, 시장의 공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연결하고 확장하려는 태도입니다. PM은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사람입니다. 이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관점을 연결해서 제품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일입니다. 기존의 틀을 넘어 연결하는 방향을 가진 사람—민연기 저자가 말하는 증강인간의 정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PM은 AI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게 있습니다.
"그러면 AI를 잘 활용하는 PM이 살아남겠네?"
아닙니다. 민연기 저자가 정확하게 짚은 것처럼, 증강인간은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충분한지 판단하고, 배움을 멈추지 않고, 기존의 틀을 넘어 연결하는 방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PM으로 치면 이런 겁니다. AI가 작성한 PRD 초안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빠진 맥락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사람. AI가 분석한 데이터에서 숫자가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읽어내는 사람. AI가 제안한 기능 목록 앞에서 "이걸 왜 만들어야 하지?"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글을 무작정 많이 쓰고 채우는 것보다 독자와의 연결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능을 무작정 많이 만드는 것보다, 사용자의 삶에 실제로 들어가는 제품을 설계하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합니다.
당신은 AI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워크 3.0 시대, PM이라는 직무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더 중요해질 거예요. 다만 PM이 하는 일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서를 쓰는 PM에서, 방향을 판단하고 가치를 설계하는 PM으로.
『증강인간』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겁니다.
당신은 AI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그리고 AI가 내놓은 답 앞에서 무엇을 판단할 것인가.
이 질문에 자기 답을 가지고 있는 PM이, 이 시대의 증강인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