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플랫폼 기업 데이터이쿠가 전 세계 CIO(최고정보책임자) 600명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놀랍습니다.
74%가 지난 18개월간 선택한 AI 벤더나 플랫폼 결정 중 최소 한 번 이상을 후회한다고 답했습니다. 62%는 CEO로부터 그 결정에 대해 직접적인 압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29%는 AI 성과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정당성을 요구받았다고 답했습니다.
85%는 자기 보상이 AI 성과와 직접 연동될 거라고 봤고, 71%는 올해 상반기까지 성과를 못 내면 예산이 삭감되거나 동결될 거라고 답했습니다. "AI 잘 쓰고 있냐"는 질문이 생존 문제가 된 겁니다.
급하게 골랐고, 성과는 안 나옵니다
왜 74%가 후회할까요? 기술을 잘못 골라서일까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보고서가 짚는 병목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현재의 병목은 AI를 구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신뢰하고 관리하며 방어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 있다."
풀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AI 도구 자체는 넘칩니다. 도입도 빠릅니다. 문제는 도입한 뒤입니다. 이 AI가 왜 이런 결과를 냈는지 설명할 수 있느냐. 문제가 생겼을 때 추적할 수 있느냐. 다른 도구로 갈아탈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느냐. 이 질문에 답을 못 하면, 도입은 했는데 운영이 안 되고, 운영이 안 되니 성과를 증명할 수 없고, 성과를 증명 못 하니 예산이 잘립니다.
CIO의 85%가 설명 가능성이나 추적 가능성 부족 때문에 AI 프로젝트가 실제 운영 단계에서 지연되거나 중단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게 이걸 보여줍니다.
통제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더 걱정되는 숫자가 있습니다. CIO의 54%가 조직 내에서 승인되지 않은 AI, 이른바 '섀도 AI'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82%는 직원들이 IT 부서가 관리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AI 도구를 만들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건 개인이 ChatGPT를 업무에 몰래 쓰는 수준을 넘어선 이야기입니다. 부서 단위로 AI 도구를 자체 구축하거나 외부 서비스를 붙이고 있는데, IT 부서가 그 전체 그림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87%가 이미 핵심 업무에 AI 에이전트가 활용되고 있다고 답했지만, 모든 AI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응답은 25%에 그쳤습니다.
조직 안에서 AI가 어디에, 어떻게, 누구의 판단으로 쓰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89%가 이 상황이 심각한 기술 부채를 만들 수 있다고 답한 건 당연합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한 발 물러서 보면, 이 보고서가 말하는 건 기술 선택의 실패가 아닙니다. 판단 체계의 부재입니다.
어떤 AI를 도입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도입 후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가 정의되지 않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되돌릴 수 있는 구조가 없었습니다. 기술은 넘쳤지만 그 기술을 평가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역량이 부족했던 겁니다.
이건 AI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클라우드가 처음 나왔을 때도, ERP를 도입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구가 강력할수록, 그 도구를 운영하는 사람의 판단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AI 시대에 조직이 갖춰야 할 역량을 셋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기술(Skill), 지식(Knowledge), 태도(Attitude).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건 앞의 두 가지입니다. 코딩, 데이터 분석, 문서 작성 같은 기술. 시장 조사, 경쟁사 분석 같은 지식. 이 영역에서 AI는 이미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서 74%가 후회한 건 기술이나 지식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 도구를 지금 도입해야 하는가",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측정할 것인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를 판단하는 태도의 영역입니다. 급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조급함,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동조, 성과 지표 없이 일단 시작하자는 안이함. 실패의 원인은 전부 태도에 있습니다.
2026년, AI가 리더십을 시험합니다
보고서는 2026년을 "AI가 본격적으로 경영 리더십을 시험하는 해"로 규정합니다. 설명 가능성, AI 에이전트 책임성, 기술 스택 유연성, 거버넌스, ROI 증명. 이 5가지 의사결정이 AI가 자산이 될지 위험이 될지를 가른다고 합니다.
CIO의 73%는 AI 거품이 꺼지면 기업에 큰 혼란이 올 거라고 봤습니다. 57%는 회사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냉정한 현실 인식입니다.
결국 AI 시대에 살아남는 조직과 개인의 차이는 어떤 AI를 쓰느냐가 아닙니다. AI 앞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입니다. 기술과 지식은 AI가 채워줍니다. 채워주지 못하는 건 판단하는 태도라는 점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실패했을 때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성과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AI를 도구로 쓰는 사람입니다. 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AI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