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해커 조지 호츠George Hotz​가 자신의 블로그에「당신은 선한 사람이다You are a Good Person​」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선한 사람의 기준을 단순명료하게 정의했습니다. "일생에 걸쳐 소비보다 생산을 더 많이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농부와 엔지니어는 선하고, 사모펀드와 부동산 투기꾼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죠. 얼핏 상식적으로 들리지만, AI가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이는 2026년 현재, 과연 '생산 > 소비'가 여전히 유효한 윤리 기준일까요?

생산성 윤리의 함정

조지 호츠의 논리는 명쾌합니다. 사회 전체가 지속 가능하려면 구성원들이 평균적으로 소비보다 생산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함정이 드러납니다. 

무엇이 '생산'인가?

그는 농부, 엔지니어, 건설 노동자, 맥도날드 요리사까지 생산자로 분류합니다. 반면 변호사, 로비스트, 부동산업자, 세일즈맨은 비생산적이라고 단정하죠. 이런 구분은 19세기 공업화 시대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물리적 산출물이 있어야만 생산이고, 서비스나 중개는 기생충이라는 시각이죠.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뛰어난 변호사 한 명이 기업의 부당한 소송을 막아내면, 그 기업이 R&D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을 보호하는 셈입니다. 세일즈맨이 좋은 제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도 가치 창출입니다. 부동산업자가 주거 수요와 공급을 매칭시키는 것 또한 엄연한 서비스죠.

더 근본적 문제는 AI 시대에 '생산' 정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GPT가 코드를 짜고, 미드저니가 디자인을 만들고, 로봇이 조립 라인을 돌린다면, 인간 생산성은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요?

AI가 바꾸는 일의 지형

2024년부터 본격화된 AI 에이전트 시대는 생산성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습니다. 한국의 한 스타트업 개발팀은 5명으로 기존 50명 규모 팀의 생산성을 달성했습니다. 이들이 '더 생산적'인가요, 아니면 AI라는 도구를 잘 활용한 것인가요?

조지 호츠가 비판하는 '비생산적' 직업들도 마찬가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에이전트는 AI로 시장 분석과 매칭을 자동화하고, 변호사는 법률 검토 업무를 AI에게 맡깁니다. 이때 이들의 가치는 단순한 '생산량'이 아니라 판단력과 책임감에서 나옵니다.

더 중요한 것은 AI 시대에 인간 역할이 '생산자'에서 '기획자'와 '감독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농부도 이제 드론과 센서로 농장을 관리하고, 엔지니어도 AI 코파일럿과 함께 설계합니다. 순수한 의미의 '인간 생산'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현실 점검

조지 호츠의 주장을 한국 상황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그가 비판하는 '비생산적 부자들'의 한국판은 건물주, 상속 재벌, 부동산 투기꾼들입니다. 실제로 이들이 사회 전체 생산성에 기여하는 바는 의문스럽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실물 경제 기반이 탄탄합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화학 같은 기업들이 여전히 '만드는' 일을 하죠. K-팝과 K-드라마도 문화 콘텐츠라는 무형 '생산물'을 만듭니다.

문제는 이런 생산 기업들조차 AI 도입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대차는 2025년부터 AI 품질 검사 시스템을 도입해 검수 인력을 30% 감축했습니다. 이들이 '비생산적'이 된 것인가요?

새로운 생산성의 기준

조지 호츠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할 때입니다. AI 시대 생산성은 양​이 아니라 질​로, 개인 기여도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 효율성으로 측정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소비 < 생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 웰빙 증진에 기여했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AI를 활용해 교육 격차를 줄이는 에듀테크 창업가, 노인 돌봄 서비스를 개선하는 기획자, 지속가능한 소비 문화를 만드는 마케터들도 모두 '생산자'입니다.

물론 조지 호츠의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남의 노동에 기대어 불로소득만 추구하는 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을 단순히 '물리적 산출물'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가치 측정 체계입니다. 당신이 만든 것, 개선한 것, 연결한 것, 보호한 것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이것이 새로운 생산성 척도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태도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AI라는 도구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요? 그 선택이 당신을 진정한 '생산자'로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