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인터넷 이론이 현실이 되고 있다
'죽은 인터넷 이론'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콘텐츠 대부분이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봇이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2021년 한 온라인 포럼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냥 음모론 취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혹시 정말 맞는 말 아닐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보안 기업 Imperva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2024년 기준 전체 웹 트래픽의 51%가 봇에 의해 생성됐다고 합니다. 그중 악성 봇이 37%나 차지하고, 이 수치는 6년 연속 늘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봇의 활동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 보는 콘텐츠의 절반 이상이 기계가 만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이, 공감 버튼을 누른 저 댓글이 정말 사람이 쓴 건지 확신할 수 없어진 것이죠. AI가 만드는 콘텐츠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품질도 사람이 쓴 것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벌써 '전도The Inversion'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가짜 조회수가 너무 많아져서 알고리즘이 오히려 가짜를 기본값으로 인식하고, 진짜 사람의 조회수를 잘못 분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뒤바뀐 세상입니다.
메타의 충격적인 특허: 죽은 사람의 AI 부활
2025년 12월, 메타Meta가 특허 하나를 취득했습니다. 이 특허의 내용은 대형 언어 모델로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를 떠나 있을 때, 예를 들어 장기 휴식 중이거나 사망한 경우에도 그 사용자의 활동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하면 죽은 사람의 계정을 AI가 대신 운영하는 것입니다.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고, 심지어 DM도 보내고, 영상 통화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허 문서에는 이런 논리가 적혀 있습니다.
사용자가 사망해서 소셜 네트워크에 돌아올 수 없을 때,
다른 사용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훨씬 심각하고 영구적이다.
그러니까 그 영향을 줄이기 위해 AI가 죽은 사람 행세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타 CTO 앤드류 보스워스가 이 특허의 주요 발명자로 등재되어 있고, 메타 측은 "실제로 개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그냥 넘어가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히브리 대학교와 라이프치히 대학교 연구진은 이 특허가 "AI 부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기존 AI 부활 사례들은 가족이나 스타트업이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소규모 프로젝트였지만, 메타의 특허는 사후 시뮬레이션을 플랫폼 인프라 자체에 내장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거든요.
이런 기술이 나오게 된 본질은 단순합니다. 인게이지먼트 때문입니다. 사용자가 줄어들면 광고 수익이 줄어드니까요.
페이스북은 이미 오래전 잊혀진 계정들, 끝없는 광고들, 답장 없는 생일 축하 메시지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AI가 생성한 유해 콘텐츠로 피드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AI가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AI가 생성한 활동이 다시 데이터가 되어 다음 세대 AI를 학습시키는 것입니다. 무한 루프입니다.
콘텐츠 양이 질을 압도하는 시대
그런데 잠깐,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현상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콘텐츠의 '양'이 '질'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
AI가 하루에 만들어내는 콘텐츠 양은 인간이 평생 만들 수 있는 양을 가뿐히 넘어섭니다. 블로그 글, SNS 포스트, 댓글, 리뷰, 뉴스 기사까지. 그런데 문제는 이것들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같은 구조의 모델이 만들어내니까요.
여기서 '모델 붕괴model collapse'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AI가 생성한 콘텐츠로 다시 AI를 학습시키면 출력물 품질이 점점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자기 복제의 복제를 반복하면 결국 원본 특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복사기로 복사한 문서를 다시 복사하고 또 그것을 복사하면 결과물 품질이 처음과 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죽은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는 세 가지 콘텐츠
그렇다면 이 죽은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는 콘텐츠는 무엇일까요? 저는 세 가지라고 봅니다.
첫 번째, 경험에서 나온 콘텐츠
AI는 학습 데이터를 조합해서 그럴듯한 텍스트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겪어보고 거기서 나온 이야기는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저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이런 실수를 했고, 이렇게 해결했습니다"라는 이야기와 "출판사 운영 시 주의해야 할 10가지"라는 AI 생성 콘텐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전자에는 실패의 맥락이 있고, 감정이 있고, 구체적인 상황이 있거든요.
AI는 패턴을 학습하지만 경험은 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 생각보다 큽니다.
두 번째, 관점이 있는 콘텐츠
같은 사실을 두고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잖아요? 그 해석의 차이가 콘텐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AI는 기존 관점들을 종합해서 가장 평균적인 답을 내놓는 데 뛰어납니다. 하지만 "나는 이 현상을 이렇게 본다"라는 독자적인 시선, 때로는 논쟁적이기까지 한 관점은 인간에게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평균에 수렴하지 않는 콘텐츠. 그것이 AI 시대에 살아남는 콘텐츠입니다.
세 번째, 신뢰가 축적된 콘텐츠
죽은 인터넷 시대에 가장 희소한 자원은 정보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정말 이 분야를 알고 있는 사람인가?" "이 정보가 검증된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콘텐츠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래서 저자의 이름이 더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인격체가 담긴 브랜드가 중요해지는 것이고요. AI가 만든 익명의 콘텐츠 수천 개보다, 신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쓴 글 하나가 더 가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출판이 AI 시대에 갖는 의미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고, 출판사의 편집 과정을 거쳤다는 검증이 붙어 있고, 물리적 형태로 존재한다는 실체가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출처 불명의 AI 생성 콘텐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책이라는 형태 자체가 자동으로 신뢰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AI로 한 달 만에 찍어낸 책이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신뢰 역시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의 의도, 저자의 진정성, 콘텐츠의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메타가 죽은 사람의 계정을 AI로 되살리려는 특허를 낸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경험하고, 그 경험에서 나온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맥락 속에서 의미 만들기
봇이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을 넘긴 시대. 죽은 사람의 SNS를 AI가 대신 운영하는 특허가 등록되어 살아있는 사람이 쓴 글인지 알 수 없어지는 시대. 이 시대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