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AI 산업에 수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오래된 숫자 하나를 꺼내 들어야 합니다.

고용유발계수입니다.

어떤 산업에 10억 원의 최종수요가 발생했을 때, 그 산업과 관련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만들어지는 임금근로자 수를 뜻합니다. 한국은행이 산업연관표를 기반으로 산출하는 이 지표는, 특정 산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계를 떠받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잣대입니다.

2023년 기준, 한국 전체 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6.2명입니다. 10억 원어치의 수요가 생기면 6.2명분의 일자리가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 숫자가 산업마다 극심하게 갈린다는 데 있습니다.

반도체는 10억에 2명, 교육은 10억에 13명

서비스업과 제조업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교육, 보건·사회복지, 음식·숙박 같은 노동집약적 서비스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명을 훌쩍 넘습니다. 건설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손이 필요한 산업은 돈이 들어오면 곧 일자리가 됩니다.

반면, 반도체나 전자부품 같은 첨단 제조업은 사정이 다릅니다. 자본집약적이고 자동화 비율이 높아, 10억 원이 투입돼도 생기는 일자리는 2~3명 수준에 그칩니다. 소프트웨어와 IT서비스도 전통적인 서비스업에 비하면 고용 흡수력이 현저히 낮습니다. 적은 인원이 높은 생산성을 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AI 산업은 이 경향을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입니다. GPU 클러스터 몇 대와 소수의 엔지니어로 수천억 원의 매출을 만들어내는 구조. AI 기업의 매출 대비 종업원 수는 전통 산업의 그것과 비교조차 어렵습니다. 한국은행이 2025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AI 전문인력은 2024년 기준 약 5.7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수조 원의 투자가 이뤄지는 산업치고는 놀라울 만큼 적은 숫자입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

이론이 아니라 현실을 봅시다. 한국은행 고용연구팀이 2025년 10월 발표한 보고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은 숫자로 증명합니다.

챗GPT가 출시된 이후 3년간(2022년 7월~2025년 7월),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21만 1천 개가 사라졌습니다. 이 중 20만 8천 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습니다. 전체 감소분의 98.6%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풍경이 더 선명해집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등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분야에서 청년 고용이 11.2% 줄었습니다. 출판업은 20.4%, 정보서비스업은 23.8%가 감소했습니다. 법률·회계 같은 전문 서비스업에서도 8.8%가 빠졌습니다.

흥미로운 건 50대의 움직임입니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 9천 개 늘었고, 이 중 14만 6천 개가 AI 고노출 업종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를 '연공편향 기술변화'라 불렀습니다. AI가 주니어의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하면서, 시니어의 조직관리·판단 능력이 오히려 희소해졌다는 분석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I 산업은 그 자체로 고용을 적게 만듭니다. 동시에 AI가 확산되는 다른 산업에서는 기존 일자리를 줄입니다. 특히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층부터 밀어냅니다.

낡은 잣대로 새 시대를 재단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산업정책은 여전히 "투자 → 성장 → 고용"이라는 공식에 기대고 있습니다. AI 반도체에 수조 원, AI 데이터센터에 수조 원, AI 스타트업 육성에 수천억 원. 이 투자들이 GDP를 끌어올리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이라는 간판을 걸기엔, 고용유발계수가 너무 낮습니다.

고용유발계수라는 지표 자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계수는 산업연관표에 기반하기 때문에, 산업 분류의 경계를 넘나드는 AI의 파급효과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합니다. AI가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여 고용을 줄이는 동시에, 전혀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직종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기존 계수로는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국가의 산업 투자가 고용 성과를 측정하려면, 기존의 고용유발계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

AI 시대의 고용 정책에는 최소한 세 가지 보완 지표가 필요합니다.

첫째, '고용 전환 계수'입니다. 특정 산업에 대한 투자가 다른 산업의 고용을 얼마나 줄이거나 바꾸는지를 측정해야 합니다. AI 산업 10억 원 투자가 AI 업종에서 3명의 일자리를 만들면서, 동시에 전통 서비스업에서 5명의 일자리를 소멸시킨다면, 순고용 효과는 마이너스입니다. 투자의 고용 효과를 그 산업 안에서만 계산하는 관행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 '고용 질 지수'입니다.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임금 수준, 고용 안정성, 숙련도 요구를 함께 봐야 합니다. AI 분야의 일자리가 적더라도 높은 임금과 안정성을 제공한다면, 단순한 숫자 비교와는 다른 평가가 가능합니다. 반대로, AI로 대체된 일자리가 플랫폼 노동이나 긱 이코노미로 전환되는 것이라면, 고용 '창출'이 아니라 고용 '열화'입니다.

셋째, '세대별 고용 영향 평가'입니다. 한국은행 연구가 보여줬듯, AI의 고용 충격은 세대에 따라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50대 시니어에게는 기회가 되고, 20대 청년에게는 장벽이 됩니다. 투자 정책이 특정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산업정책 실패가 아니라 사회적 위험입니다.

투자의 방향이 아니라 투자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AI에 투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AI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면 산업 전체의 미래가 위태로워집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다만 AI 투자의 성과를 "일자리 몇 개 만들었나"로 측정하는 관행은 이제 시대착오입니다. 고용유발계수가 2~3명에 불과한 산업에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을 붙이는 건 국민에게도, 정책 자체에도 정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AI 투자 정책의 성과 지표를 솔직하게 재설계할 때입니다. 생산성 향상 기여도, 산업경쟁력 지수, 기술 자립도 같은 지표를 전면에 놓고, 고용 문제는 별도의 정책 축으로 분리해야 합니다. AI가 만드는 부가가치의 일부를 교육, 돌봄, 보건 같은 고용유발계수가 높은 분야에 재분배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10억 원을 쏟아부었을 때 몇 명이 일하게 되는가. 이 오래된 질문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답을 내는 방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낡은 잣대로 새 시대를 잴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