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미국 출판 업계 법조 담당자들이 한 법원 문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앤스로픽이 작가·출판사 측과 저작권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했다는 소식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합의금 자체가 아니라, 그 돈을 작가·출판사·에이전시 중 누가 얼마나 가져가느냐를 두고 3자가 충돌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AI 기업이 지불하기로 한 돈이 수령자 진영 안에서 다시 분쟁 대상이 된 것입니다. 저작권 소송이 AI 기업을 향한 외부 싸움에서 콘텐츠 생산자들 사이의 내부 분배 분쟁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장면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금융 시장에서는 다른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LG AI 연구원이 공개한 EXAONE Finance 논문에는 AI 에이전트를 투자 판단에 쓸 때 왜 범용 모델이 위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이터가 담겨 있었습니다. 성능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시장 전체가 더 위험해지는 경로를 보여주는 숫자들이었습니다.

합의금 테이블 위에 올라온 새로운 분쟁

지금까지 AI 저작권 소송의 구도는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AI 기업이 저작물을 무단으로 학습 데이터에 포함했다는 혐의를 받고, 콘텐츠 권리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형태였습니다. 뉴욕타임스, 시카고트리뷴, 더 애틀랜틱 등 미국 주요 언론사들이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그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앤스로픽 사례는 이 구도에 새로운 층을 추가했습니다. 앤스로픽은 2024년 말 미국 작가 단체 및 출판사들과 진행 중이던 저작권 소송에서 비공개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불거졌습니다. 합의금을 받을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놓고 출판사, 작가 협회, 문학 에이전시 세 주체가 서로 다른 계산서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출판사는 자신들이 저작물의 권리를 계약상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작가 단체는 창작 행위의 주체는 작가라고 맞섰습니다. 에이전시는 계약 구조상 자신들에게 수수료 권한이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2025년 3월 현재까지 이 분쟁은 법원 조정 단계에 있습니다. 합의금 총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법조 전문지 Publishers Weekly는 "분쟁의 구조가 앞으로 AI 저작권 합의 전반의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같은 시기 뉴스 미디어 쪽에서는 Ziff Davis가 오픈AI를 상대로 새로운 소송을 제기했고, 제소 이유로 기사 요약 기능을 통한 간접 트래픽 가로채기를 명시했습니다. 학습 데이터 사용 단계에서 시작된 분쟁이 AI가 생성한 아웃풋의 수익화 단계까지 뻗어나간 사례입니다.

LG AI 연구원은 2025년 3월 EXAONE Finance 모델과 함께 관련 기술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 시계열 데이터에 특화 훈련을 한 모델과 범용 언어 모델 사이에는 시장 충격 시뮬레이션에서 뚜렷한 행동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범용 모델을 다수의 독립 에이전트에 적용할 경우, 유사한 학습 배경으로 인해 매매 판단이 수렴하는 경향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관측됐습니다.

성능 곡선이 오를수록 쏠림도 함께 오릅니다

"더 좋은 AI를 쓰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은 개인 사용자 수준에서는 대체로 맞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AI 모델이나 동일 아키텍처 계열 모델을 수백, 수천 명의 투자자가 동시에 활용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EXAONE Finance 보고서가 짚은 지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학습 데이터와 모델 구조를 공유한 AI들이 시장에 많아질수록, 각 에이전트가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행동이 서로 수렴합니다. 분산 투자의 효과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분산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구조적으로 상관 매매로 변질됩니다. 개별 에이전트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집단적 쏠림의 강도도 함께 높아지는 경로가 확인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시스템 리스크라고 부릅니다. 2010년 플래시 크래시, 2020년 3월 코로나 충격 때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하락을 증폭시킨 방식과 구조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이전 알고리즘은 동일 규칙 기반으로 설계된 소수 기관의 시스템이 문제였다면,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서로 다른 회사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운용하는 수많은 에이전트가 유사한 학습 배경을 가진다는 점에서 파악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LG AI 연구원이 범용 모델 대신 금융 특화 모델 개발을 선택한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범용 대형 언어 모델은 금융 용어를 이해하고 리포트를 요약하는 수준에서는 충분히 유용합니다. 그러나 특정 종목의 거래량 이상, 금리 변동 주기, 섹터별 수익률 시계열 같은 금융 고유의 패턴을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할 때는 훈련 데이터 구조 자체가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저작권 분쟁 쪽으로 시선을 옮겨도 비슷한 패턴이 보입니다. AI 기업들은 모델 성능을 높이기 위해 더 많고 더 질 좋은 데이터를 학습에 투입해 왔습니다. 성능 향상의 논리가 데이터 수집의 논리를 추동했고, 그 수집 과정에서 콘텐츠 생산자와의 마찰이 축적됐습니다. 성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저작권 충돌 면적도 넓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커리어와 비즈니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긴장이 있습니다. 성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이 자동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지금 AI 생태계가 법·금융 두 축에서 동시에 보여주는 것은, 기술의 성능 곡선과 시스템 안정성 곡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인 사업자·기획자가 지금 확인해야 할 지점들

이번 흐름은 AI를 실무에 쓰는 한국의 1인 사업자, 콘텐츠 디렉터, 솔로 PM에게 세 가지 실질적인 검토 과제를 남깁니다.

콘텐츠 원천 관련 계약 조항을 다시 읽어 볼 시점입니다. 앤스로픽 합의금 분쟁에서 드러난 것은, AI 기업이 지불한 돈을 콘텐츠 생태계 내부에서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서도 AI 학습 데이터 사용과 관련한 저작권 가이드라인이 2025년 안에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이 제공하거나 활용하는 콘텐츠의 계약 구조, 특히 라이선스 조항과 2차 사용 범위를 미리 검토해 두는 것이 나중에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출판사, 미디어, 에이전시와 협업 중이라면 AI 관련 수익 귀속 조항이 계약서에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AI 도구를 고를 때 모델 다양성을 고려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EXAONE Finance 사례는 금융 시장 이야기이지만, 그 원리는 마케팅, 콘텐츠 기획, 고객 분석 등 다른 영역에도 적용됩니다. 경쟁자들이 모두 같은 AI 도구, 같은 프롬프트 패턴, 같은 데이터 소스를 쓴다면 산출물의 차별화 가능성은 좁아집니다. 동일 모델을 쓰더라도 학습시키는 데이터나 프롬프트 설계에서 독자적인 맥락을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특정 도메인에 특화된 소형 모델이나 파인튜닝된 버전을 범용 모델과 병행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 관련 실무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AI가 생성한 텍스트, 이미지, 코드를 상업적 산출물에 포함했을 때 그 출처와 활용 방식을 기록해 두는 사람은 아직 소수입니다. 그러나 미국 법원 판례들이 AI 생성물의 저작권 귀속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한국 기업들도 관련 계약 조항을 점검하는 움직임이 2025년 들어 빨라졌습니다. 클라이언트 납품물에 AI 활용 여부를 표시하는 방식, 사용한 도구와 버전을 기록하는 방식을 지금부터 정해두면 나중에 분쟁 소지를 줄이는 데 유리합니다.

금융 AI 도구를 투자 판단에 직접 연결하는 것은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EXAONE Finance 보고서가 경고한 시스템 쏠림 리스크는 개인 투자자에게도 해당합니다. AI가 추천한 종목이나 매매 타이밍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그 AI와 유사한 모델을 쓰는 다른 투자자들의 행동이 내 행동과 겹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시장이 흔들릴 때 내가 팔고 싶은 순간, 같은 AI를 쓰는 수많은 사람도 같은 신호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AI 도구 선택은 업무 효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어떤 리스크 구조 안에 들어가는지를 함께 따지는 결정이 됐습니다. "이 도구가 내 일을 얼마나 빠르게 해주는가"와 함께 "이 도구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얼마나 동일한 방식으로 쓰고 있는가"를 나란히 물어야 합니다.

앤스로픽 합의금이 세 주체의 손에서 나뉘지 못한 채 법원 조정 테이블 위에 올라 있는 동안, AI가 더 정확해질수록 시장이 더 동시적으로 움직인다는 데이터가 쌓이고 있습니다. 성능이 올라가는 속도와 그 성능을 쓰는 구조를 이해하는 속도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것, 그것이 지금 AI 도구를 실무에 쓰는 사람들에게 남은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