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 문체를 흡수하는 것과, 그 책 수십만 권을 훈련 데이터로 삼아 글쓰기 모델을 만드는 것 — 표면만 보면 비슷해 보입니다. 둘 다 다른 사람의 텍스트에서 무언가를 가져갑니다. 둘 다 새로운 결과물을 냅니다. 그런데 하나는 아무 제약이 없고, 다른 하나는 현재 미국 연방법원 여러 곳에서 동시에 심리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조지 R. R. 마틴, 조디 피코, 존 그리샴을 포함한 수백 명의 미국 작가가 OpenAI, Meta, Anthropic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작가조합(Authors Guild)이 조율한 집단소송도 그 중 하나입니다. 공통된 주장은 명확합니다. 허락 없이 자신의 책이 AI 훈련에 쓰였고, 그 AI가 이제 자신의 창작 시장과 경쟁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소송도 아직 최종 판결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고, 표현을 보호합니다
이 소송들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저작권이 실제로 무엇을 보호하는가에 있습니다.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외로운 탐정이 낡은 저택에서 사건을 푼다"는 설정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설정을 특정한 문장과 묘사로 구현한 표현만 보호받습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분은 저작권법에서 가장 오래된 원칙 중 하나입니다.
이 원칙이 AI 훈련 논쟁에서 두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AI 기업들은 모델이 특정 저자의 문장을 복제하는 게 아니라 수십억 건의 텍스트에서 통계적 패턴을 추출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독서를 통해 문체와 구성 방식을 흡수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는 논리입니다. 저자들은 그 패턴 추출 자체가 저작물의 가치를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두 주장 모두 기존 판례만으로는 쉽게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규모와 재현 가능성에서 두 행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 두 행위를 나란히 놓으면 어디서 달라지는지가 보입니다.
재현 가능성부터 봅니다. 사람이 책을 읽은 뒤 그 문장을 그대로 쓴다면, 그것은 의도적 복제입니다. AI 모델은 학습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기억하도록 설계되지 않지만, 특정 조건에서 학습 데이터와 상당히 유사한 출력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OpenAI를 상대로 낸 소송 증거물에는, 모델에 특정 기사를 유도했을 때 원문과 거의 일치하는 출력이 나온 사례가 포함돼 있습니다.
규모도 다릅니다. 사람이 평생 읽는 책은 많아도 수천 권입니다. Meta가 LLaMA 모델 훈련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데이터셋 Books3에는 약 19만 6,000권의 책이 담겨 있었는데, 그 상당 부분이 인터넷의 불법 서적 공유 사이트에서 수집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과, 수십만 권을 처리하는 플랫폼이 저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달리 계산됩니다.
시장 대체 여부가 미국 공정이용(Fair Use) 판단의 네 번째 기준입니다. 사람이 소설을 읽고 영향을 받아 새 소설을 써도 원작 시장을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AI가 수십만 저자의 문체와 서술 방식을 학습해 유사한 장르의 글을 대량 생산한다면, 그것이 해당 저자들의 시장 일부를 잠식한다는 주장은 논거로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 법원이 아직 이 판단을 확정하지 않은 것이 현 상황입니다.
일부 AI 기업들이 법원 판결보다 먼저 라이선스 계약에 나섰습니다
법원 결론이 나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OpenAI는 뉴스코프(Wall Street Journal 모회사), AP통신, 파이낸셜타임스와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AP 계약의 경우 연간 수백만 달러 규모로 보도됐고, 구체적인 금액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계약들이 법적 의무에서 비롯됐는지, 규모 있는 파트너십인지는 양쪽 해석이 모두 가능합니다. 그런데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기업이 먼저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 기업이 자신의 법적 지위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한국 저자와 콘텐츠 디렉터에게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영문 번역본이 있거나 국제 플랫폼에 유통된 한국 출판물은 해당 데이터셋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웹에 공개된 텍스트 — 블로그, 뉴스레터, 롱폼 칼럼 — 는 Common Crawl 같은 공개 웹 데이터셋을 통해 별도 동의 없이 이미 다수 모델의 학습 데이터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에게 지금 열려 있는 행동과 그 한계
법원 판결 전까지 저자에게 실질적으로 열린 선택지는 제한적입니다.
웹 콘텐츠라면 robots.txt 파일에 주요 AI 크롤러를 차단하는 설정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OpenAI의 GPTBot, Common Crawl의 CCBot 등 주요 크롤러 식별자가 공개돼 있고, 기술 문서를 따라가면 30분 안에 설정됩니다. 단, 이후 수집을 막을 뿐, 이미 수집된 데이터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출판된 책은 상황이 다릅니다. 특정 모델의 학습 데이터에서 자신의 책을 제외하는 공식 창구가 아직 없습니다. 일부 AI 기업이 삭제 요청을 받는다고 밝히지만, 처리 여부를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나마 현실적인 경로는 저자 단체가 집단 협상력을 모아 라이선스 대가를 받아내는 방식입니다. 음악 산업에서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집단 협상이 저작권자 보호 구조를 바꾸는 데 수년이 걸렸고, 결과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단독으로 대기업과 협상하는 것보다는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 경로입니다.
저작권이 보호하는 범위를 알아야 자신이 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무엇은 요구하기 어려운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보호받지 못하지만, 표현은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AI가 그 표현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지금 법원이 기준을 만들고 있는 문제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그 기준이 나오기 전에 이미 계산을 마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