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Y Combinator 데모 데이를 앞두고 약 180개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동일한 제안이 도달했습니다. OpenAI CEO 샘 올트먼이 직접 나섰습니다. 현금 투자 대신 OpenAI API 크레딧, 즉 토큰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고, 그 대가는 각 스타트업의 지분이었습니다. 배치에 합류한 전체 스타트업에, 조건은 동일하게.

TechCrunch는 이 장면을 "mic drop moment"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대를 떠나는 것처럼, 반박보다 수용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구조였다는 뜻입니다. YC 창업자들 사이에서 이 제안을 두고 며칠간 논의가 이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초기 스타트업에게 인프라 비용 걱정 없이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제안은, 거절하기 위해 논리를 준비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거절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투자금이 컴퓨팅이 된 순간

거래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OpenAI가 현금 대신 API 크레딧을 지급하고, 스타트업은 이를 투자금으로 인정해 지분을 넘깁니다. 투자금의 형태가 현금에서 컴퓨팅 리소스로 바뀐 것입니다.

이 방식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AWS가 수년간 초기 스타트업에게 클라우드 크레딧을 지원해 왔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습니다. 현금 대신 서비스를 투자 수단으로 인정하는 방식은 실리콘밸리에서 이미 검증된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례가 기존과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규모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YC 배치 전체를 대상으로 단일 조건을 동시에 제안했다는 점입니다. OpenAI는 한 번의 발표로 180개 스타트업과 동시에 지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투자자가 포트폴리오를 한 곳씩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한 번에 묶는 방식입니다.

타이밍도 들여다볼 만합니다. AI 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스타트업에게 초기 인프라 비용은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입니다. LLM API 의존도가 높은 제품일수록 초기 운영 비용이 빠르게 상승합니다. 초기 traction이 잡히기 전에 비용이 먼저 치고 올라오는 구조를 경험한 팀이라면, 이 제안의 타이밍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가장 커 보이는 순간에 해결책을 들고 온 사람이 협상에서 어떤 위치에 서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거래를 단순한 투자로 읽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당사자입니다. AI 인프라를 공급하는 회사의 CEO가 직접 나서, 자사 크레딧과 스타트업 지분을 교환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투자자의 언어와 플랫폼 확장의 언어가 같은 문장 안에서 합쳐지는 장면입니다. 이런 구조는 해당 회사가 업계 전체에 필수 인프라를 공급하는 위치에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이 제안에 회의적인 이유들

이 거래를 긍정적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은 발표 직후부터 등장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비판은 종속성에 관한 것입니다. 초기 서비스 구조를 OpenAI API 기반으로 설계한 스타트업은, 이후 앤트로픽이나 구글 딥마인드, 또는 오픈소스 모델로 전환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따릅니다. 코드베이스 수정, 프롬프트 아키텍처 재설계, 응답 처리 방식 변경, 팀 재교육—이 모든 비용이 특정 제공자에 맞춰질수록 커집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이라고 부릅니다. 무료 인프라로 시작했지만, 이후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났을 때 이탈할 수 없는 구조를 초기에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치 평가의 비대칭성도 지적됩니다. 이 거래에서 크레딧 단가는 OpenAI가 정하고, 스타트업 지분의 미래 가치는 시장이 정합니다. 한쪽은 현재 가치가 확정적이고, 다른 한쪽은 미래 가치가 불확정 상태입니다. 이 비대칭 구조에서 어느 쪽이 유리한 위치인지 거래 구조를 읽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챕니다.

또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API 크레딧은 소진 가능한 자원이고, 사용처가 그 플랫폼으로 제한됩니다. 현금은 팀 채용, 마케팅, 공간 임차 등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크레딧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용 목적이 제한된 자원으로 목적 제한이 없는 자산인 지분을 넘기는 거래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 제안을 받아들인 창업자 모두가 분석 없이 서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초기 인프라 비용 부담을 줄이고 제품에 집중할 수 있다는 선택지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합리성을 계산하는 기준을 스스로 설정했는지, 아니면 제안의 매력에 설득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과정은 결과는 같아 보여도 이후 협상 테이블에서 전혀 다른 위치를 만들어냅니다.

한국 창업자·실무자에게 같은 구조가 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YC 생태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1인 창업자, 솔로 PM, AI 도구를 도입하는 실무자에게 동일한 구조가 다른 형태로 이미 도달해 있습니다.

무료 플랜으로 진입을 유도하는 AI SaaS, 초기 무상 크레딧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파트너십, 파일럿 단가로 도입하고 이후 단가를 조정하는 계약 구조, 특정 AI 제공자의 API를 기본 레이어로 삼아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모든 것이 초기에 특정 플랫폼과 종속 관계를 형성하는 유인책입니다. 지분을 요구하지 않을 뿐, 거래의 논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AI 서비스의 전환 비용을 계산해 본 적이 있습니까. 프롬프트 재설계, 워크플로우 재구성, 팀 재교육, 데이터 포맷 변환—이 비용을 합산해보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종속 관계에 들어선 조직이 적지 않습니다. 전환 비용이 높아질수록 구독 단가 인상이나 약관 변경, 서비스 조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듭니다.

또한 지금 사용하는 도구가 어느 시점부터 '선택 가능한 도구'에서 '교체하기 어려운 인프라'가 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구는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지만, 인프라는 교체 비용이 유지 비용보다 커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 경계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미래의 협상 여지를 남기는 첫걸음입니다.

거래를 평가할 때 상대방의 제안 구조보다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은, 영업과 협상을 다루는 실무에서 반복됩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되 거래 구조를 먼저 읽는 습관은, 매력적인 제안 앞에서도 판단력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올트먼의 제안을 수락한 YC 스타트업들이 수년 후 어떤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가져갈 레버리지는, 지금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따져봤느냐에 상당 부분 달려 있습니다.

현금 없이 AI를 받는 방식이 새로운 투자 언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언어를 읽는 눈이 없으면, 가장 매력적인 제안이 가장 비싼 거래로 끝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