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코드 품질만큼은 인공지능보다 낫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같은 기능을 짜도 인공지능이 뱉은 초안에는 손볼 데가 보이고, 직접 쓰면 한 번에 깔끔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제 연동 코드를 직접 붙들고 두 시간을 보냅니다. 인공지능에 맡기면 검수에 시간이 더 들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더 잘하는 일을 남에게 넘기는 게 아깝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코드는 깔끔하게 붙었는데, 그날 만나기로 했던 첫 고객 인터뷰는 다음 주로 또 밀립니다. 잘하는 일을 한 시간 더 했고, 사업을 가르는 일을 한 시간 덜 했습니다.
이 장면에는 1인 창업자가 가장 자주 빠지는 함정이 들어 있습니다. 잘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붙들고, 못하는 일만 골라 넘기는 습관입니다. 직관적으로는 맞아 보이지만, 이 기준으로 경계를 그으면 가장 값나가는 시간을 가장 값싼 일에 쓰게 됩니다. 위임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못하는 일을 맡긴다는 기준은 절반만 맞습니다
위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은 "내가 못하는 일을 맡긴다"입니다. 마케팅 출신 창업자는 개발과 디자인을 넘기고, 개발자 출신은 카피와 정산을 넘깁니다. 자기가 서툰 영역을 채운다는 점에서 틀린 답은 아닙니다. 다만 절반만 맞습니다. 이 기준은 잘하는 일은 당연히 직접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그 결론이 앞 장면의 두 시간을 만듭니다.
남는 절반을 채우는 것이 200년 된 무역 이론입니다.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D. Ricardo)가 비교우위 원리로 밝힌 그대로입니다. 핵심은 절대 실력이 아니라 기회비용입니다. 두 가지 일을 다 잘하는 사람이라도, 두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한쪽을 붙들면 다른 쪽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붙들고 있는 동안 무엇을 포기하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원래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역을 설명하던 원리인데, 교역 상대가 나라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적용됩니다.
잘하는 일을 쥐고 있을수록 포기하는 값이 큽니다
코드 품질이 인공지능보다 나은 개발자로 돌아가 봅니다. 절대 실력으로는 사람이 위에 있습니다. 인공지능에 코딩을 넘기면 품질이 조금 떨어지고, 그 차이를 메우는 검수에도 시간이 듭니다. 못하는 일을 맡긴다는 기준으로 보면 코딩은 당연히 직접 할 일입니다. 그런데 비교우위는 다른 칸을 함께 봅니다. 그가 코딩에 쓰는 한 시간은 제품 기획이나 고객 인터뷰에 쓸 수 있었던 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기획 한 시간이 만드는 가치가 코드 품질의 차이보다 크다면, 코딩은 인공지능에 넘기고 마지막 검수만 남기는 쪽이 사업 전체의 산출을 키웁니다.
여기서 기준이 뒤집힙니다. 따져야 할 질문은 "인공지능이 나보다 잘하는가"가 아니라 "그 일을 내가 붙들고 있는 동안 무엇을 포기하는가"입니다. 잘하는 일일수록 더 붙들고 싶어지는데, 잘하는 일을 하는 한 시간이 비싼 만큼 그 시간에 포기하는 다른 일의 값도 큽니다. 코드를 깔끔하게 짜는 두 시간의 진짜 가격은 외주비나 도구 사용료가 아니라, 그동안 못 만난 첫 고객입니다. 잘하기 때문에 아까워서 쥐고 있는 과업일수록, 쥐고 있는 대가로 포기하는 가치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비교우위가 가리키는 "덜 아까운 일"이 무엇인지는 노동경제학이 미리 결을 갈라 두었습니다. 데이비드 오터(D. Autor)와 동료들은 기술이 루틴 과업, 곧 절차를 규칙으로 적을 수 있는 일을 대체하고, 판단과 창의와 맥락 해석 같은 비루틴 인지 과업은 오히려 보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인공지능에 넘기기 좋은 일은 절차를 문서로 적을 수 있는 일이고, 내 쪽에 남길 일은 판단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절차를 적을 수 있는 루틴 과업은 대개 누가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다시 말해 덜 아까운 일입니다. 비교우위가 기회비용으로 가른 선과 노동경제학이 과업의 성질로 가른 선이 같은 곳에 떨어집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현장 실험에서 나옵니다. 에릭 브리뇰프슨(E. Brynjolfsson) 연구진이 콜센터 상담원 5,179명을 관찰한 실험에서, 생성 인공지능 도입은 평균 14%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고 그 효과는 신입과 저숙련 집단에서 34%로 가장 컸습니다. 1인 창업자 쪽에서 읽으면 함의가 분명합니다. 인공지능 위임의 이득은 내가 서툰 영역에서 가장 큽니다. 마케팅 출신이라면 익숙한 마케팅보다 개발과 디자인과 정산처럼 자신이 신입인 영역부터 인공지능을 붙이는 편이 이득이 큽니다. 비교우위가 말한 "덜 아까운 일"과 현장 실험이 말한 "서툰 일"이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서로 출발점이 다른 200년 전 무역 이론과 최근의 콜센터 데이터가 같은 결론에 닿는 이 지점은, 한쪽만 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분업은 일의 총량을 줄이기보다 일의 종류를 바꿔 놓습니다. 다론 아세모글루(D. Acemoglu)와 파스쿠알 레스트레포(P. Restrepo)가 정리한 대로, 자동화는 기존 과업에서 사람의 몫을 줄이는 한편 새 과업을 만들어 냅니다. 초안 작성을 넘기면 그 빈 곳에 검수 기준 만들기, 지시문 다듬기, 여러 산출물 가운데 고를 것을 고르는 큐레이션이라는 새 일이 생깁니다. 줄어든 일은 절차를 적을 수 있는 일이고, 새로 생긴 일은 판단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덜 아까운 일을 넘긴 곳에, 더 아까운 판단의 일이 들어섭니다.
비교우위로 경계를 다시 긋는 세 가지
첫째, 과업 옆에 "이걸 하는 동안 못 하는 일"을 한 줄씩 적습니다. 지난 2주의 과업을 펼쳐 놓고, 각 과업을 직접 하는 동안 밀려난 일을 옆에 적어 봅니다. 코드 두 시간 옆에는 고객 인터뷰가, 정산 정리 옆에는 다음 제품 기획이 적힐 것입니다. 포기한 일이 그 과업보다 값나가는 항목은, 잘하는 일이어도 넘길 후보입니다. 비교우위의 계산을 종이 위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연습입니다.
둘째, 잘해서 쥐고 있는 과업을 따로 표시합니다. 못해서 넘긴 과업은 이미 떠났습니다. 문제는 잘해서 안 넘긴 과업입니다. 목록에서 "내가 잘해서 직접 한다"는 이유가 붙은 항목에 표시를 하고, 그중 절차를 문서로 적을 수 있는 일을 골라냅니다. 잘하면서 동시에 문서로 적히는 일이라면, 잘한다는 이유는 넘기지 말아야 할 근거가 못 됩니다. 그 일은 첫 위임 후보입니다.
셋째, 서툰 영역부터 인공지능을 붙입니다. 위임을 어디서 시작할지 막막하다면, 내가 신입인 영역을 먼저 봅니다. 콜센터 실험이 확인한 대로 이득이 가장 큰 곳이 거기입니다. 단, 한 번도 직접 해 본 적 없는 일은 맡겨도 검수하기 어려우니, 좋은 결과물과 그럴듯한 결과물을 가르는 눈을 만들 만큼은 한 번 직접 해 본 뒤에 넘깁니다. 서툰 영역의 첫 위임은 일을 없애는 게 아니라, 검수할 줄 아는 상태를 만드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생산성에서 수익성으로
비교우위로 경계를 다시 긋는 일은 단순히 시간을 아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덜 아까운 일을 넘겨 비운 시간을, 판단이 쌓이고 고객이 늘어나는 일에 옮겨 붓는 것이 핵심입니다. 코드 품질을 0.1만큼 높이는 두 시간과, 첫 고객의 진짜 문제를 알아내는 두 시간은 같은 두 시간이 아닙니다. 앞의 시간은 결과물 하나로 끝나고, 뒤의 시간은 다음 결과물 전부의 방향을 정합니다. 잘하는 일을 줄이고 값나가는 일을 늘리는 이 교환이, 빨라진 손을 매출로 잇는 첫 단추입니다. 위임 기준을 못하는 일에서 덜 아까운 일로 바꾸는 순간, 분업은 생산성의 도구에서 수익성의 도구로 넘어갑니다.
이 시리즈는 한 권의 원고를 한 편씩 풀어 갑니다. 회계와 경제와 경영과 투자의 표준 이론을 분과 경계 없이 1인 사업의 문제로 다시 묶은 책 『혼자서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넘긴 과업을 정리한 표가 어떻게 직원 없는 회사의 조직도 구실을 하는지, 그리고 그 경계선이 왜 분기마다 다시 그어야 하는 움직이는 선인지를 다룹니다. 잘하는 일을 붙들고 있느라 정작 사업이 밀린다고 느낀 분이라면, 종이 한 장에 과업 옆 포기한 일부터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개념 별첨
- 비교우위 원리 — 데이비드 리카도(D. Ricardo, 1817)가 제시. 절대 실력과 무관하게 기회비용이 낮은 쪽에 특화해 교환하면 양쪽 모두 이득을 얻는다는 원리입니다. 교역 상대를 나라에서 인공지능으로 바꾸면, 나와 인공지능 사이의 과업 배분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 루틴·비루틴 과업 구분 — 데이비드 오터(D. Autor)·프랭크 레비(F. Levy)·리처드 머네인(R. Murnane)이 노동경제학에서 정리. 절차를 규칙으로 적을 수 있는 루틴 과업은 기술이 대체하고, 판단과 맥락 해석이 드는 비루틴 인지 과업은 보완합니다.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남길지 가르는 결이 됩니다.
- 과업 기반 자동화 모형 — 다론 아세모글루(D. Acemoglu)·파스쿠알 레스트레포(P. Restrepo)가 제시. 자동화는 기존 과업에서 사람의 몫을 줄이는 대체 효과와 함께 새 과업을 만들어 내며, 위임은 일의 총량보다 일의 종류를 바꾼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