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사고를 줄이려고 점검표를 하나 만들었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의뢰가 들어오면 요구사항과 동작 일관성과 결제 흐름을 세 단계로 거르는, 당신만 쓰는 절차였습니다. 이 절차 덕에 작업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고 재작업 요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일감을 나누던 동료가 그 점검표를 보고 자기도 쓰고 싶다고 했고, 당신은 별 생각 없이 파일을 보냈습니다. 석 달 뒤 이름이 지워진 그 점검표가 커뮤니티 두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기분은 상했지만, 그날 밤 적어 둔 메모는 감정과 달랐습니다. 안에서 쓰려고 만든 것에 밖에서 값을 치를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꺼내는 방식을 내가 설계하지 않으면 값은 남이 매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안에서 만든 것을 언제 어떤 꼴로 밖에 꺼낼지 정하는 그 설계가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한 번 만든 것을 두 번 쓴다는 말의 뜻
한 번 만들어 두 번 쓴다는 것은, 내부용으로 만든 절약 도구를 외부화해 수익 상품의 부품으로 다시 쓰는 전환입니다. 외부화란 내 맥락에 묶여 있던 산출물에서 남도 쓸 수 있는 부분을 떼어 내, 거래할 수 있는 꼴로 바꾸는 작업을 말합니다. 당신의 점검표가 겪은 일은 이 전환의 앞 절반이었고, 뒤 절반은 당신이 직접 설계해야 했습니다.
점검표는 만들던 날에는 내 시간을 줄이는 절약 도구였습니다. 가치는 시간당 단가 곱하기 절약 시간으로 천장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동료의 부탁은 그 물건에 다른 이름이 붙을 수 있다는 첫 신호였습니다. 같은 문제를 겪는 남이 손을 내밀었다면 점검표는 외부화 후보로 다시 적혀야 하고, 도구와 시장과 측정이라는 세 축이 붙는 순간 수익 상품의 부품이 됩니다.
거래할 수 있는 꼴이라는 말은 풀어 쓸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절차가 내 폴더 구조나 내 말버릇, 내 고객사 이름에 기대지 않고 굴러가야 합니다. 사는 사람이 다른 것을 더 사지 않아도 약속된 결과를 얻는 완결된 단위여야 하고, 어디까지가 상품이고 어디부터가 별도 의뢰인지 경계도 그어져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점검표는 첫 조건부터 걸렸습니다. 단계 설명 곳곳에 자기만 아는 줄임말이 박혀 있어서, 커뮤니티에 돌던 판본을 받은 사람들은 절반쯤 쓰다 멈췄다고 했습니다. 밖에서 돌아다닌 것은 상품의 원석이었고, 원석과 상품 사이의 거리가 곧 외부화에 드는 작업량입니다.
아이디어는 닳지 않습니다
이 전환이 1인 기업에서 유난히 힘이 센 이유는 성장경제학이 설명합니다. 로머(P. Romer)는 아이디어가 비경합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내생적 성장 이론을 세웠고, 그 공로로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빵은 내가 먹으면 남이 못 먹지만, 점검표는 동시에 천 명이 써도 내 것이 닳지 않습니다. 복제의 한계비용이 0에 가깝기 때문에 한 번 만든 지식 자산은 쓰임이 늘수록 단위당 원가가 떨어집니다. 외주 빌드의 매출은 내 시간에 비례해 천장이 있지만, 점검표 판매의 매출은 내 시간과 끊겨 있습니다. 1인 기업의 복리는 이 끊김에서 나옵니다.
비경합성은 가격을 매기는 방식도 바꿉니다. 시간을 파는 일의 가격은 들어간 시간에서 출발하지만, 닳지 않는 자산은 한 부를 더 파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므로 가격의 근거가 원가에서 구매자가 얻는 가치 쪽으로 옮겨 갑니다. 점검표 한 부가 구매자의 작업 시간을 매달 다섯 시간 줄여 준다면, 값의 기준은 내가 들인 제작 시간이 아니라 그 다섯 시간입니다. 복제 비용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의 함의는, 가격을 낮추지 않고도 수량을 늘릴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경로를 가장 큰 규모로 보여 준 공개 사례가 아마존입니다. 2003년 사내 모든 팀이 기능을 정해진 연결 규약으로만 주고받으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자사 전자상거래를 돌리려고 쌓은 컴퓨팅 인프라는 그 지침 위에서 부서 바깥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꼴로 정비됐고, 2006년 AWS라는 이름으로 외부 고객에게 열렸습니다. 안에서 쓰려고 만든 서버와 저장소가 밖에서 값을 받는 상품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시점이 있습니다. 아마존도 내부 도구가 자사 운영에서 완성된 다음에야 밖으로 꺼냈습니다. 안에서 검증되지 않은 것을 외부화하는 일은 두 번 쓰기가 아니라, 한 번도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을 파는 일입니다.
원리 자체는 오래됐습니다. 다만 첫 판을 만드는 비용이 높아서, 비경합재의 이득은 오랫동안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와 플랫폼 기업의 것이었습니다. 첫 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은 시간을 파는 쪽에 머물렀습니다. 인공지능이 바꾼 지점이 여기입니다. 점검표 한 부, 정리된 데이터 하나를 만드는 시간이 수십 분의 일로 줄었으므로, 한 번 만들어 두 번 쓰는 회전의 주기도 같이 짧아졌습니다. 원리는 그대로인데 회전 속도가 달라졌고, 그 차이가 이 원리를 한 사람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다만 같은 경제학이 경고도 줍니다. 진입이 자유로운 시장에서 차별화만으로 버티는 상품의 장기 이윤은 0으로 수렴합니다. 절차형 자산은 베끼기 쉬우므로 외부화한 점검표의 우위는 시한부입니다. 그래서 모방자가 들어온 뒤의 대응을 미리 그려 둘 필요가 있습니다. 절차 문서 자체는 베껴도, 그 절차를 만들며 쌓인 실패 사례와 구매자 질문의 기록은 베끼기 어렵습니다. 외부화한 상품의 다음 판은 문서가 아니라 그 기록에서 나옵니다. 점검표의 개정판에 구매자들이 실제로 막힌 대목의 해설이 붙으면, 모방자의 복제본과는 재료부터 달라집니다. 우위가 시한부라면, 첫 판이 팔리는 동안 다음 판의 재료를 모으는 일정부터 적어 두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가릅니다. 외부화하려는 것이 일반 절차, 그러니까 남도 시간만 들이면 만들 수 있는 지식이라면 시장에 내놓는 쪽이 맞습니다. 그 직무의 값은 몇 해 안에 범용 도구가 깎아 내릴 공산이 큽니다. 깎일 매출이라면 남이 깎기 전에 내가 먼저 상품으로 바꾸는 편이 유리합니다. 반대로 고객별 축적 데이터나 거래 관계처럼 베낄 수 없는 특수 자산은 안에 남겨 다음 상품의 재료로 씁니다. 베커(G. Becker)가 일반훈련과 특수훈련을 가른 기준이 여기에 그대로 포개집니다. 당신의 경우 빌드 점검 절차는 일반이고, 고객사별 운영 데이터는 특수였습니다. 절차만 떼어 팔고 데이터는 지키는 분리가 가능했기에, 외부화는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오늘 점검할 세 가지
지금 손에 든 절약 도구가 밖에서 팔릴 후보인지는 세 가지만 적어 보면 드러납니다.
첫째, 지난 분기에 만든 내부용 도구와 절차를 늘어놓고 각각에 같은 문제를 겪는 남이 손을 내민 적이 있는지 표시해 봅니다. 직접 요청을 받은 항목이 있다면 그것이 1순위 후보입니다. 요청은 없지만 커뮤니티나 검색에서 그 문제를 찾는 흔적이 보인다면 2순위입니다. 흔적조차 없다면 아직 내부용으로 두고, 수요 신호가 올 때까지 후보 목록에만 적어 둡니다. 만드는 수고를 이미 본업에서 회수한 물건이므로, 적어 두는 데 드는 비용은 그 한 줄뿐입니다.
둘째, 1순위 후보 하나를 골라 일반 절차와 특수 자산으로 갈라 적어 봅니다. 내 폴더 구조와 줄임말과 고객사 이름을 걷어 내도 남는 부분이 일반 절차이고, 걷어 내면 물건이 무너지는 부분이 특수 자산입니다. 둘이 깨끗하게 갈라지면 일반 절차만 다듬어 내놓고 특수 자산은 안에 남깁니다. 갈라지지 않는 후보는 그 사실만으로 보류 판정입니다. 매출 욕심에 내 우위의 재료를 통째로 넘기는 일을 이 한 단계가 막아 줍니다.
셋째, 다듬는 작업에 손실 상한을 미리 긋습니다. 손에 익은 절차를 남이 쓸 수 있게 다듬는 일은 생각보다 깁니다. 머릿속에만 있던 전제를 글로 적고, 처음 보는 사람이 어디서 막히는지 지켜보고 안내문을 고쳐야 합니다. 이 두어 달 동안 매출 기여는 0이고 본업 시간만 줄어듭니다. 이를테면 석 달 동안 매주 여덟 시간까지라고 시작 전에 적어 두면, 구간이 길어질 때 그 줄이 기분을 대신해 계속할지 접을지 정합니다. 줄을 긋는 시점은 다듬기를 시작하기 전이어야 합니다. 그 한가운데서 긋는 줄은 이미 기분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성에서 수익성으로
외부화 앞에서 대부분 같은 두려움을 만납니다. 점검표를 팔면 고객이 그것으로 직접 빌드하고 내 의뢰가 끊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 도구를 들고 기존 시장에 들어간 당신 자신이 누군가의 외주 일감을 깎으며 진입했습니다. 내가 남의 일감을 깎으며 들어왔듯 내 우위도 같은 방식으로 깎입니다. 잠식될 만한 루틴 일감은 어차피 줄고 있고, 그 빈 시간을 외부화가 만든 새 매출이 채웁니다.
생산성과 수익성을 가르는 선이 여기 있습니다. 도구를 빨리 써서 내 시간을 아끼는 데서 멈추면 생산성이고, 그 도구가 만든 결과물을 한 번 더 부려 내 시간과 끊긴 매출을 만들면 수익성입니다. 인공지능은 만드는 비용을 무너뜨렸지만, 무엇을 꺼내고 무엇을 지킬지 정하는 판단의 값은 오히려 올려놓았습니다.
이 시리즈는 회계와 경제와 경영과 투자의 표준 이론을 분과 경계 없이 1인 사업의 문제로 다시 묶은 한 권의 원고에서 출발합니다. 외부화의 설계도까지 손에 쥐었다면 남은 것은 그 설계도가 놓이는 땅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업자등록의 형태와 과세 유형, 플랫폼 정산 주기, 줄어드는 인구 같은 한국의 조건이 같은 설계도 위에서 어떤 변수를 고정하고 어떤 기회를 여는지를 다룹니다. 만든 것을 팔기로 마음먹은 분이라면, 다음 편이 그 땅을 밟는 첫걸음입니다.
개념 별첨
- 아이디어의 비경합성과 내생적 성장 이론 — 경제학자 로머(P. Romer, JPE 1990)가 세운 틀로, 아이디어는 한 사람이 써도 닳지 않아 동시에 여럿이 쓸 수 있는 비경합재라고 봅니다. 복제의 한계비용이 0에 가깝다는 이 성질이, 한 번 만든 지식 자산을 쓰임이 늘수록 단위당 원가가 떨어지는 1인 기업의 복리 자산으로 만듭니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
- 인적자본의 일반훈련과 특수훈련 — 노동경제학자 베커(G. Becker)가 가른 기준으로, 어디서나 값이 매겨지는 일반적 역량과 특정 관계 안에서만 값을 갖는 특수적 역량을 구분합니다. 외부화 설계에서는 일반 절차를 시장에 내놓고 특수 자산을 안에 남기는 분리의 근거가 됩니다.
- 내부 역량의 외부 서비스화(AWS 패턴) — 아마존이 자사 운영을 위해 쌓은 컴퓨팅 인프라를 2006년 외부 상품으로 연 사례입니다. 내부 도구가 자사에서 완성된 다음에야 외부화했다는 시점의 조건이 1인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