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에 긴 기사의 주소를 입력하면 요약본이 나옵니다. Perplexity는 같은 주제를 다루는 문서 여러 편을 묶어 질문에 직접 답합니다. 이 도구들이 실무에 정착하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하나의 방향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AI가 읽기 좋게 글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조를 단계적으로 나누고, 핵심을 단락 앞에 배치하고, 소제목으로 흐름을 표시하라는 권고가 여러 플랫폼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권고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Google이 2024년 5월 내놓은 AI 개요(AI Overview) 기능은 검색 결과 화면 상단에 AI가 정리한 답을 내놓습니다. AI가 내용을 읽고 답을 만들어낸다면, 그 AI가 파악하기 쉬운 글이 소스로 선택되는 데 유리하고, 소스가 되지 못하면 클릭이 줄어든다는 논리는 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권고를 뒷받침하는 전제를 한 단계 더 따라가면 균열이 생깁니다.
AI가 쉽게 읽는 글은 독자가 쉽게 건너뛰는 글이기도 합니다
AI가 잘 요약하는 글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주장이 단계적으로 전개되고, 핵심 명제가 단락 앞이나 뒤에 선명하게 나오며, 예시가 주장을 직접 뒷받침합니다. 이런 글은 AI 요약 이전에도 독자가 소제목과 첫 문장만 훑어도 내용을 거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AI 요약을 거쳐도 글의 가치가 온전히 전달된다는 것은, 요약 이전 원본이 요약보다 더 많은 것을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치가 요약에 실린다면, 원본은 길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이렇게 됩니다. AI가 쉽게 요약한 글은 처음부터 요약됐어도 됐던 글입니다.
AI-friendly 글쓰기 권고가 설정하는 목표를 구분할 필요가 여기서 생깁니다. 하나는 AI 요약의 소스로 포함되는 것입니다. AI가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야 소스로 선택되고, 이를 위해 구조가 명확한 글이 유리합니다. 다른 하나는 AI 요약을 본 독자가 원본을 클릭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목표는 겹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소스 포함이 목표라면 명제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맞습니다. 요약 이후에 독자가 원본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요약에 담기지 않은 것이 글 안에 있어야 합니다.
Hacker News에서 AI가 콘텐츠를 대신 읽는다는 주제를 다룬 논의가 400점 이상의 반응을 모은 것은, 이 현상이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이미 실질적인 질문이 됐다는 뜻입니다. 그 질문이 "어떻게 AI에 최적화할까"에서 멈추면, 두 목표를 혼동한 채 전략을 짜는 셈입니다.
요약문이 전달하지 못하는 정보의 종류
AI 요약이 잘 다루지 못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명제 자체는 옮길 수 있지만, 그 명제가 참이 되는 조건과 거짓이 되는 조건은 좀처럼 옮기지 못합니다.
카페 창업을 앞두고 임대료 기준을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AI 요약은 "월 매출 대비 10~15% 이내가 권장된다"는 명제를 빠르게 가져다줍니다. 독자는 이 정보를 얻고 원본을 클릭하지 않습니다.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AI 요약이 "이 기준은 상권 유형과 고정비 구조에 따라 적용이 달라지며, 일부 도심 상권에서는 이 기준을 충족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정리했다면, 독자는 자신의 상권이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알고 싶어서 원본을 찾습니다.
두 경우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 요약은 명제를 담았습니다. 두 번째 요약은 명제가 무너지는 조건을 담았습니다. 독자가 원본을 클릭하는 이유는, 요약이 조건의 경계를 열어보였지만 그 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보의 종류 차이입니다. "무엇인가"는 요약됩니다. "어떤 조건에서 이것이 달라지는가"는 요약되기 어렵습니다. 후자를 다루는 글은 AI 요약이 오히려 독자를 원본으로 보내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이 두 번째 종류의 정보를 갖추는 것은 길이와 관계가 없습니다. 짧은 글에도 조건의 경계를 담을 수 있고, 긴 글이라도 명제만 늘어놓으면 요약됩니다. AI-friendly 구조가 요약을 쉽게 만드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요약 이후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구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보의 종류에 달려 있습니다. 글쓰기 방향을 바꾼다면, 시작점은 이렇습니다. 핵심 명제를 쓴 뒤, 그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 상황을 한 단락 더 씁니다. AI 요약은 이 단락을 담으려 하지만 완전히 담지 못하고, 그 불완전함이 독자를 원본으로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