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운용 중인 펀드가 하나도 없던 기관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그 기관의 운용자산(AUM)은 1,200억 원을 넘겼습니다. 이 성장을 처음부터 함께 설계한 인물이 중소벤처기업부 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내놓은 첫 번째 발언이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끼리 기업가치를 올리기보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유니콘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책 언어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창업자뿐 아니라 기획자·콘텐츠 디렉터·1인 사업자 모두가 자신의 사업에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내 사업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국내 독주가 해외 앞에서 할인되는 과정
한국 벤처투자업계에는 몇 년 전부터 '국내 밸류에이션 착시' 논의가 간헐적으로 불거졌습니다. 국내 시리즈A에서 500억 원대 기업 가치를 받은 스타트업이 글로벌 VC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200억 원대로 재평가되는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이 격차는 투자자의 인색함보다 평가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국내 투자자는 국내 시장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국내에서 경쟁자가 없고 한국 사용자 지표가 탄탄하면, 그것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근거가 됩니다. 해외 투자자는 다른 기준을 가져옵니다. 한국 시장이 글로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제품이 다른 언어와 다른 규제 환경에서도 동일한 가치를 만드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탄탄한 국내 지표가 한국어 서비스·한국인 사용자·한국 유통망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글로벌 기준에서 할인의 근거가 됩니다.
목승환 중기부 실장은 이 구조를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본 인물 중 하나입니다. 투자팀장으로 2016년에 합류해 10년 가까이 수십 개의 초기 기업을 심사하고 지원했습니다. 국내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해외 진출 과정에서 밸류에이션 갭을 실감한 기업들을 반복해서 목격하면서 쌓인 관찰이 그 발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발언을 정책 의지보다 현장 데이터의 언어로 읽고 싶습니다. '우리끼리 올린 기업가치'라는 표현은, 그 반복을 눈앞에서 경험한 사람이 고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업자가 글로벌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이 발언을 단순하게 읽으면 "모든 사업자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언의 맥락과 다릅니다.
한국은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고소비력 내수 시장입니다. 식음료·뷰티·로컬 서비스·지역 B2B처럼 문화적·지리적으로 뿌리내린 사업은 국내 시장만으로 수익 구조를 완성해도 충분히 지속 가능합니다. 코스닥·코넥스 상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 한국 고객을 중심으로 안정적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글로벌 VC 기준과 무관하게 자체 논리를 가집니다. 투자자가 다르고 엑시트 경로가 다르며, 사업의 성공 지표도 달라야 합니다. 카페를 운영하거나 지역 밀착형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사람에게 '해외 인정 없이는 허구'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발언을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목승환 실장이 겨냥한 것은 유니콘 — 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스케일을 전제한 스타트업 — 이었습니다. 국내 투자금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기업에게 국내 밸류에이션이 천장이 된다는 문제를 짚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기점이 생깁니다. 디지털 제품을 만들거나 온라인 콘텐츠·플랫폼·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이 논의가 다른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이 유형의 사업은 물리적 경계를 초과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이 사업의 상한선을 규정하는 변수가 됩니다. 국내 기준만으로 설정한 단가와 포지셔닝이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스스로 좁히는 경우가 그렇게 생깁니다. 내수 전용으로 설계한 것인지, 아니면 내수에서 먼저 시작했을 뿐인지 — 이 두 가지는 사업의 방향이 다릅니다.
기준점을 설정하는 일이 전략보다 앞섭니다
벤처투자 세계에서 기업 가치는 숫자로 표현됩니다. 1인 사업자의 세계에서는 단가·고객 리텐션·재구매율·입소문 반경 같은 지표가 그에 해당합니다. 그 지표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가 사업이 향하는 방향을 결정합니다.
한국 창업자·기획자·프리랜서 사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기준점은 '국내 업계 평균'입니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받는 단가, 비슷한 계정이 모으는 팔로워 수, 비슷한 제품이 받는 리뷰 평점. 이 안에서 잘하고 있으면 안도하게 됩니다. 국내 밸류에이션 착시가 반복되는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기준점을 국내에만 두면, 해외와의 격차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여러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초기 투자 결정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짚는 것이 있습니다. 제품의 잠재력을 판단할 때 현재 시장 규모보다 먼저 보는 것이 '왜 지금, 왜 이 팀이'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 답이 한국 시장의 맥락 안에만 묶여 있다면, 확장을 전제로 한 자본은 관심을 거둡니다. 1인 사업자에게 주는 시사도 비슷합니다. 내 서비스의 차별점이 한국 시장의 맥락에만 유효한 것인지, 아니면 그 맥락을 걷어냈을 때도 남는 것인지를 한 번쯤 따져보는 것입니다.
실무적으로 점검해볼 것들이 있습니다. 내 제품이나 서비스의 작동 원리가 언어나 지리를 초과할 수 있는가. 한국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내용의 구조·포맷·핵심 질문이 다른 언어로 옮겨도 유효한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경쟁자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것이 시장 자체의 부재인지 아니면 글로벌 플레이어가 이미 그 수요를 흡수하고 있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현재 받는 단가가 국내 평균보다 높더라도, 같은 작업을 해외 시장에서 제공한다면 어느 수준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 점검이 반드시 글로벌 진출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수 시장에서 깊이 뿌리내린 사업을 키우는 것 자체가 유효한 전략입니다. 그러나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라면, 자신의 기준점이 국내에 묶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AUM 1,200억 원을 만든 사람이 정책 자리로 이동하면서 첫 번째로 꺼낸 말이 '글로벌 인정'이었다는 사실은, 10년을 현장에서 보낸 사람의 관찰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국내 생태계 안에서 유니콘 소리를 들어도 해외에서 같은 평가가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기획자·콘텐츠 디렉터·1인 사업자도 자신의 방식으로 마주합니다. 사업을 평가하는 기준점을 어디에 두는가 —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사업자가 한 번은 스스로 정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