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수 없는 투자 요청
매출의 절반이 거래처 두 곳에서 나옵니다. 그 두 곳이 새 장비와 인력을 갖추라고 요구하면 거절할 수 있습니까. 거절하면 매출 절반이 흔들리고, 받아들이면 투자 결정권이 내 손을 떠납니다. 지난주 아마존이 서 있던 자리가 정확히 이 지점이었습니다. 엔비디아 GPU 주문이 며칠 사이 200만 개에서 3배 규모로 불어나는 동안, 그 규모를 정한 쪽은 아마존이 아니라 아마존의 상위 고객들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숫자부터 보겠습니다. AWS의 영업이익은 398억 달러로 아마존 전사 영업이익의 58%를 차지합니다. 영업이익률 39%는 클라우드 사업의 수익성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수익의 44%가 상위 4개 고객에서 나옵니다. 신규 고객 파이프라인은 6개월째 정체 상태라는 분석이 함께 나왔습니다. 성장은 있지만 기존 고객이 더 많이 쓰는 성장이지, 고객이 늘어나는 성장이 아닙니다.
이 구조 위에서 8월 말 며칠간 일어난 일이 이번 주 흐름의 핵심입니다. 27일 엔비디아 GPU 200만 개 추가 구매, 28일 300만 개, 30일에는 기존의 3배 주문이라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아마존은 Trainium이라는 자체 칩을 이미 개발해 두었고, CEO가 그 수요를 매우 강하다고 표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엔비디아 칩을 더 샀습니다. 같은 기간 자유현금흐름이 음수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왔고, 스웨덴 풍력 200MW 계약과 Corning 광섬유 계약으로 전력과 통신망까지 직접 확보에 나섰습니다.
자체 칩을 두고 남의 칩을 산 이유
이유는 고객 쪽에 있습니다. 상위 고객들은 이미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 위에 자기 소프트웨어 스택을 쌓아 두었습니다. 그들에게 Trainium으로 옮기라는 말은 자기 투자를 버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에 메모리 칩 공급 제약까지 겹치면서 자체 칩이 대체할 수 있는 속도에 한계가 생겼습니다. 결국 아마존은 고객이 원하는 칩을 고객이 원하는 양만큼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소수 고객 의존 리스크의 진짜 모양이 드러납니다. 흔히 이 리스크를 매출 항목으로만 봅니다. 그 고객이 떠나면 매출이 얼마 빠지는가. 그러나 아마존의 한 주는 의존이 양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고객 비중이 커질수록 그 고객의 요구를 맞추기 위한 투자 규모가 커지고, 그 투자에 쓸 공급자를 고를 자유는 줄어듭니다. 사슬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고객 비중이 공급자 선택권을 삼키고, 그 끝에서 현금흐름이 음수로 돌아선 것입니다. 1조 달러 AWS 매출 목표라는 큰 그림도 결국 이 소수 고객이 계속 더 많이 쓴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1인 사업자에게 주는 교훈
규모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거래처 두 곳이 매출의 절반이라면, 그 거래처가 쓰는 도구와 플랫폼과 납품 규격이 곧 내 투자 목록이 됩니다. 거래처가 특정 소프트웨어 형식으로 파일을 요구하면 그 라이선스를 사야 하고, 특정 장비 규격을 요구하면 그 장비를 들여야 합니다. 이때 내가 더 싸고 좋은 대안을 알고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아마존이 Trainium을 두고 엔비디아를 산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두 숫자를 같은 표에 놓아야 합니다. 첫째 줄은 상위 고객 매출 비중, 둘째 줄은 그 고객 때문에 묶인 핵심 공급자의 대체 가능성입니다. 대체 가능성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 공급자가 가격을 올리거나 공급을 끊으면, 거래처와의 계약을 유지한 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가. 답이 아니오라면 그 공급자 비용은 소수 고객 의존 리스크의 일부이지 별도 항목이 아닙니다. 분기마다 두 줄을 나란히 보면, 고객 비중이 오를 때 대체 가능성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줄이는 길도 이 표에서 나옵니다. 아마존이 6개월째 못 하고 있는 신규 고객 채우기가 첫째 줄을 낮추는 길이고, 납품 형식을 특정 도구가 아니라 결과물 규격으로 합의해 두는 것이 둘째 줄을 지키는 길입니다.
이번 주 시도할 한 가지
이번 주에는 표 하나만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왼쪽 열에 상위 세 거래처와 매출 비중을 적고, 오른쪽 열에 그 거래처 때문에 쓰고 있는 공급자와 도구, 그리고 대체 가능 여부를 적습니다. 오른쪽 열에 아니오가 몰려 있는 줄이 있다면, 그 거래처가 다음 분기에 무엇을 요구해도 거절하지 못하는 자리입니다. 아마존은 그 자리에서 GPU를 3배로 샀습니다. 내 사업에서는 그 자리가 어디인지 먼저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