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여섯 개, 저녁에 남는 것
아침에 할 일 앱에 여섯 개를 적었는데, 저녁이 되면 절반은 내일로 밀리고 하나는 문구를 바꿨고 하나는 지우지도 못한 채 남아 있는 날이 반복됩니다. 혼자 사업을 꾸리거나 기획 일을 하는 분이라면 낯설지 않은 장면일 것입니다. 계획이 틀렸다기보다, 계획과 하루가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갑니다.
이런 할 일 관리 앱 미루기를 두고 흔히 의지의 문제로 돌립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개인의 게으름인지, 아니면 계획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움직이는 것인지는 따져 볼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실제 사용 기록으로 답하려 한 연구가 있습니다.
2만4천 건의 할 일을 6주간 따라가다
Srija Halder 등 연구진은 널리 쓰이는 일일 플래너 앱의 시간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957명의 사용자가 6주 동안 남긴 24,265건의 과제가 대상입니다. 실험실에서 과제를 주고 관찰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평소대로 앱을 쓰는 동안 쌓인 기록을 그대로 본 실사용 환경 연구입니다. 자기보고 설문도 함께 받았습니다.
이 연구의 요점은 할 일 하나를 생애로 본 데 있습니다. 과제가 만들어진 순간, 이후 시간이나 문구가 고쳐진 순간, 완료나 포기로 결과가 기록된 순간까지를 한 줄로 이어 추적했습니다. 계획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야 보인다는 것이 연구진의 전제입니다.
곧장 끝난 일은 넷 중 하나뿐이었습니다
연구진이 과제의 생애를 끝까지 따라가 보니, 만들어진 할 일은 크게 세 갈래로 갈렸습니다.
수정 없이 곧장 완료된 과제는 26.4%에 그친 반면 포기된 과제는 32.0%로, 끝낸 것보다 버린 것이 많았습니다. 나머지는 미뤄지거나 고쳐지거나 끝내 미해결로 남았습니다.
포기되는 과제에도 유형이 있었습니다. 특정 시각 없이 하루 종일로 잡은 과제와 길게 잡은 과제가 유독 많이 버려졌습니다. 시간을 정해 둔 과제는 상대적으로 덜 버려졌지만, 그중 77.6%는 정해 둔 시각보다 늦게 완료로 표시되었습니다. 시간을 박아 두면 끝나기는 하되 제때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용자 쪽도 갈렸습니다. 909명을 대상으로 잠재 프로파일 분석을 한 결과 높은 참여 집단이 11.1%, 낮은 참여 집단이 19.7%, 수동적 집단이 69.2%였습니다. 열에 일곱은 앱을 깔아 두고 띄엄띄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집단을 가른 지표는 앱을 실제로 연 날수였고, 이 날수는 사후 설문에 응답했는지와도 연관이 있었습니다.
계획을 짤 때 무엇을 바꿀 것인가
1인 사업자와 기획자에게 이 결과는 몇 가지 행동으로 번역됩니다.
첫째, 하루 종일 과제를 줄입니다. 언제 할지 정하지 않은 항목이 유독 많이 버려졌습니다. 거래처 연락이나 견적서 작성처럼 막연히 오늘 안에 하겠다고 적은 항목은 오전 중 한 시각을 붙이는 편이 살아남을 확률을 높입니다.
둘째, 길게 잡은 일은 쪼갭니다. 긴 과제가 포기되기 쉬웠다는 결과는 사업계획서 완성 같은 큰 덩어리를 그대로 적지 말라는 신호입니다. 오늘 끝낼 수 있는 한 조각으로 적어야 완료 표시를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늦게 끝나는 것을 실패로 세지 않습니다. 시간을 정한 과제 넷 중 셋은 예정보다 늦게 끝났습니다. 일정을 짤 때부터 밀림을 전제로 여유를 두면 밀린 항목이 다음 항목을 연쇄로 무너뜨리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넷째, 앱을 여는 날수를 관리합니다. 연구에서 사용자 유형을 가른 지표는 앱을 실제로 연 날수였습니다. 할 일 관리 앱 미루기를 막는 첫 조건은 매일 한 번 앱을 여는 습관입니다.
이 숫자를 읽을 때 조심할 것
이 연구는 하나의 앱, 6주라는 기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앱이나 종이 수첩에서도 같은 비율이 나온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연구 개요만으로는 사용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또 앱 기록은 행동을 보여 줄 뿐 이유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포기로 기록된 과제가 실제로 안 한 일인지, 앱 밖에서 끝냈는데 표시만 안 한 것인지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사후 설문 완료와 활동 일수의 연관도 상관관계이지, 자주 열면 성실해진다는 인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남기는 시사점은 분명합니다. 계획 도구를 평가할 때 적는 순간만 볼 것이 아니라, 적힌 뒤 고쳐지고 밀리고 사라지는 과정까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할 일 목록에서 매일 밀리는 항목이 있다면, 의지를 탓하기 전에 그 항목이 하루 종일 과제인지, 너무 긴 덩어리인지부터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