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패션 유통 대기업 넥스트(Next)의 최고경영자 울프슨 경(Lord Wolfson)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같은 자리에 두 배나 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고요.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그가 이어 덧붙인 말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입사 경쟁이 심해진 게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AI 자동화가 초급 직무를 '극적으로' 감소시킬 것이라는 그의 말은 단기 전망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진행 중인 변화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넥스트 규모의 기업 CEO가 이런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업계 내부에서는 그 방향이 이미 굳어졌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취업 준비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뽑아야 하는 소상공인, 팀을 구성해야 하는 1인 창업자도 이 변화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숫자 뒤에 숨은 구조

넥스트는 영국에서 6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유통사입니다. 울프슨 경은 20년 넘게 이 회사를 이끌며 리테일 업계에서 발언 무게가 상당한 인물입니다. 그가 밝힌 수치는 단순한 채용 통계가 아닙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같은 포지션에 두 배의 인원이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얼마나 빠르게 심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가 경기 침체 탓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를 지목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AI가 콜센터 응대, 재고 관리, 물류 추적, 데이터 입력처럼 초급 직원들이 맡던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신입을 뽑아 훈련시키는 이유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일을 배우는 자리가 사라지면, 그 이후 단계로 올라가는 경로도 함께 좁아집니다.

한국도 비슷한 흐름 위에 있습니다. 대기업 공채 규모 축소, 중소기업의 경력직 선호 현상은 이미 몇 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23년에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신입 채용 비중이 전체의 35%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취업 준비생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채용 구조 자체의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경기 탓인가, 기술 탓인가

이 현상을 AI 자동화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비판적 시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원자 증가는 경기 침체와 맞물려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은 2024년 실질임금 성장이 멈추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국면을 겪었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이직을 미루고 안정적인 대기업에 지원을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같은 자리에 두 배가 몰렸다면, 채용 기준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지원자들이 달리 갈 곳을 잃은 것일 수 있습니다.

AI가 초급 직무를 대체한다는 주장도 아직은 예측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콜센터 자동화나 물류 로봇 도입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규모 인력 감축이 수치로 확인된 사례는 제한적입니다. 맥킨지와 세계경제포럼이 내놓는 '수억 개 일자리 소멸' 전망은 모델 가정에 따라 결과값이 크게 달라집니다. CEO의 발언은 업계의 방향성을 짚은 것이지, 이미 벌어진 현실의 확인은 아닙니다.

AI 자동화가 특정 직무를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낸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AI 운영자, 프롬프트 설계자, 데이터 검수자, AI 출력물 편집자 같은 역할은 2년 전에는 없던 직함입니다. 문제는 이 새 일자리들이 기존 초급직과 같은 규모의 수요를 만들어낼지 여부입니다. 이 점은 아직 불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울프슨 경의 발언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경기 회복 이후에도 채용 구조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침체는 일시적이지만, 자동화 설비에 대한 투자는 한번 이뤄지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채용하는 쪽에서 보면 달라집니다

1인 사업자나 소규모 팀을 운영하는 창업자라면 이 변화를 다른 각도에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원자가 두 배로 늘었다는 건,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 역할을 사람이 해야 하는가?"

채용 담당자의 시선으로 구직 시장을 들여다보면, 구직자가 어느 지점에서 탈락하는지가 보입니다. 탈락 지점을 살펴보면 이력서의 형식보다는, 지원자 본인이 그 역할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소규모 사업자가 초급 인력을 뽑을 때 흔히 쓰는 기준인 "일단 성실하면 돼", "배우면서 성장하면 되지"는 AI 자동화 국면에서 얼마나 유효할까요. AI가 기계적 반복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 사람에게 남는 것은 판단, 관계 관리, 예외 처리, 문제 해결입니다. 처음부터 그걸 기대하고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기준으로 지원자를 보는 순간 시장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지원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넥스트 같은 대기업이 AI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면서도 사람을 유지하는 영역이 있다면, 그 영역이 어디인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방식으로 준비하는 것이 지원 서류 100장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채용 공고에 적힌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것과, 그 역할에서 실제로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은 출발점부터 다른 작업입니다.


지원자 두 배라는 숫자는 경쟁의 강도가 아니라 구조의 이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 몇 명이 몰리는지보다, 어떤 자리가 앞으로도 존재할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더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