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구글 CEO가 AI를 언급한 순간, 수백 명의 졸업생들이 박수 대신 야유를 선택했습니다. 2025년 5월, 에릭 슈미트는 졸업식 연단에 올라 새로운 기술이 열어줄 가능성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졸업생들에게 AI는 기회이기 이전에, 4년 치 학비와 취업 준비의 무게를 한꺼번에 위협하는 단어였습니다. 슈미트가 보는 시장과 졸업생들이 체감하는 시장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그 장면이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야유가 터진 졸업식장,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슈미트가 등장한 졸업식은 2025년 5월에 열렸습니다. 전 구글 최고경영자 출신의 그는 현재 다수의 AI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자문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연설 중 AI의 부상과 그것이 열어줄 기회를 언급했을 때, 졸업생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BBC를 포함한 외신들이 이 장면을 보도했고, 영상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 반응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2024년 하반기부터 미국 주요 테크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AI 자동화 투자를 늘렸습니다. Google, Meta, Microsoft 모두 정규직 채용 규모를 유지하거나 축소하는 동안, AI 관련 인프라 지출은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신입 대졸자들이 전통적으로 맡아왔던 자료 수집, 문서 초안 작성, 데이터 정리 같은 업무가 가장 먼저 자동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이 느끼는 불안은 추상적인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열려 있는 채용 공고 숫자를 직접 확인하면서 오는 현실 인식입니다.
한국 시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읽힙니다. 주요 대기업 공채 규모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AI 도구를 도입하면서 인당 처리 가능한 업무량이 늘었습니다. 신입을 채용해서 훈련하는 것보다, 기존 직원이 AI를 활용해 더 많은 것을 처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실제로 생기고 있습니다.
슈미트가 옳았지만, 그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야유가 과민반응이라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기술 혁신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포는 산업혁명 이후 반복되어 왔고, 실제로는 기존 일자리보다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 미래 일자리 보고서에서, AI 도입으로 2030년까지 약 6,9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AI 트레이너, 프롬프트 전략가, 자동화 감사 담당자 같은 직종이 실제로 채용 공고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보면 슈미트가 강조하려 했던 낙관론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낙관론에는 중요한 조건이 빠져 있습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사실과, 지금 막 사회에 나온 사람이 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2030년까지 6,9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해도, 2025년 지금 채용 공고를 뒤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 숫자는 시간적으로 너무 멀리 있습니다. 게다가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기존 경력자나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점하게 됩니다. 역사적 낙관론은 10년에서 20년 단위의 예측이고, 졸업생들의 불안은 앞으로 6개월 이내의 현실입니다. 시간 축이 다른 두 이야기를 같은 연단에서 꺼내면 충돌이 생깁니다. 슈미트의 말 자체가 틀린 게 아니라,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처지와 들을 준비가 된 자리가 있습니다. 그날 졸업식장은 그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채용 담당자가 실제로 보는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의 취업 준비생, 신입 PM, 이제 막 1인 사업자로 출발한 사람들에게 이 장면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불안을 느끼는 것과 그 불안을 어디에 쓰는지가 다릅니다. 야유를 던진 졸업생들의 불안은 정확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채용 시장을 들여다보면, 채용 담당자들이 보는 기준이 조용히 이동했습니다. 이전에는 신입 채용에서 "이 사람이 훈련 가능한가"를 봤습니다. 지금은 그 질문에 하나가 덧붙었습니다. "이 사람이 AI 도구의 결과물을 판단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것은 자기소개서에 AI 관련 수료증을 하나 더 추가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채용 현장에서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도구를 다뤄본 경험 자체보다, 도구가 내놓은 결과물의 어디를 믿을 수 없는지를 짚어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작성한 시장 분석 보고서를 그대로 제출하는 사람과, 그 보고서에서 어떤 전제가 검증되지 않았는지를 먼저 표시하고 수정한 사람은 전형 과정에서 다른 인상을 줍니다. 프롬프트를 잘 설계하는 기술보다, 결과물의 신뢰도를 자체적으로 검증하는 판단이 더 희소해진 시대입니다. 이 능력은 AI 강의에서 배우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AI 도구를 쓰면서 잘못된 결과물을 직접 경험하고 수정해본 사람만 갖게 됩니다.
채용 공식을 오래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변화도 있습니다. 채용 공고에 명시된 자격 요건과 실제 전형에서 평가하는 기준 사이에 간극이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공고에는 아직 AI 활용 능력이 필수 항목으로 올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과제 전형이나 면접 현장에서는 이미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요건과 실제 평가 사이의 이 간극을 먼저 파악한 사람이 지원 전략 자체를 다르게 짭니다. 지원서의 언어를 구성하는 방식, 포트폴리오에서 강조하는 항목, 면접에서 꺼내는 경험의 순서가 달라집니다.
1인 사업자나 프리랜서에게도 이 논리는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고객이 자신에게 맡기는 이유가 AI로 처리하기 어려운 영역인지, 이미 AI가 더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인지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포지션을 재확인하는 이 질문은 불쾌하지만, 가장 실용적인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슈미트에게 야유를 던진 졸업생들은 아마 지금쯤 각자의 방식으로 그 불안을 다루고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LinkedIn에 자격증을 하나씩 추가하고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직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차이가 생기는 지점은 불안의 크기가 아닙니다. 채용 담당자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실제로 보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야유는 억만장자 한 명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입하려는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향한 것이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