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 2026에는 140개국에서 10만 명이 넘는 참가자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행사장 곳곳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대화는 "어느 모델이 더 성능이 좋은가"가 아니었습니다. 글로벌 기업 임원과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거듭 꺼낸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AI를 어떻게 실제 현장에 심고, 어떻게 통제하며,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이 질문이 낯설지 않은 분이 있을 겁니다. AI 도구를 도입했는데 막상 달라진 것이 없고, 구독료는 매달 빠져나가지만 생산성 수치는 제자리입니다. 팀원에게 AI 도구를 권했는데 두 주가 지나도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비바테크 2026이 보여준 전환은 그 공백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단서를 담고 있습니다.
2026년 비바테크, 무엇이 화두였는가
비바테크는 매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기술 박람회입니다. 2026년 행사에서는 에이전트 AI, AI 주권, 오픈소스 전략, 에너지 인프라라는 네 가지 주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에이전트 AI의 부상입니다. 에이전트 AI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목표를 주면 스스로 단계를 나누고 실행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메일을 분류하고, 보고서 초안을 잡고, 데이터에서 이상 징후를 찾아내는 작업을 사람의 개입 없이 처리합니다. 행사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이 에이전트를 기존 업무 흐름에 어떻게 끼워 넣는지 사례를 발표했고, 청중은 기술 원리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를 훨씬 많이 물었습니다.
AI 주권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유럽은 미국·중국 빅테크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AI 역량을 키우겠다는 방향을 재확인했습니다. "어느 모델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데이터를 보유하고, 누가 시스템을 통제하는가"가 핵심 관심사로 부상한 것입니다. 오픈소스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외부 API에 의존하는 대신 자체 인프라에서 모델을 운영하면 데이터 통제권이 사용자 쪽에 남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인프라 논의는 얼핏 대기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AI 연산에 드는 전력 소비가 급격히 늘면서 클라우드 AI 서비스 가격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가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지금 무료나 저가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그 조건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기술이 평준화될 때 무엇이 남는가
2년 전만 해도 AI 도구 간 성능 차이는 컸습니다. 어떤 모델을 쓰느냐만으로 실질적인 차이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상위 모델들의 성능이 빠르게 수렴하면서 모델 선택보다 운영 방식이 성과를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비바테크에서 발표된 기업 사례들이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성과를 낸 기업들 사이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었습니다. AI를 적용하는 업무 범위를 처음에는 좁게 설정했습니다. "모든 업무에 AI를 쓰겠다"는 선언은 어떤 도구도 충분히 파고들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좁은 단위 업무에 집중한 조직은 적용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을 축적해 다음 업무로 넘어갔습니다. 처리 시간, 오류 발생률, 반복 수정 횟수 같은 구체적인 지표로 AI 적용 전후를 비교했고, 수치를 근거로 조건을 바꾸거나 적용 단계를 조정했습니다.
범위를 좁히고 수치로 추적한다는 것은 사실 AI 이전에도 효과적인 업무 개선 방식이었습니다. 비바테크 2026의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조직일수록 AI 도입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분석에 반론이 있습니다. 비바테크에서 발표된 사례들은 대부분 글로벌 대기업이나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의 경험입니다. 이들에게는 AI 운영을 전담하는 엔지니어와 실험에 쓸 예산이 있습니다. 1인 사업자나 5인 미만 소규모 팀은 AI를 도입하는 동시에 영업도 하고, 납품도 처리하고, 경비도 정리해야 합니다. 주의를 나눌 여력 자체가 다릅니다. 게다가 측정 지표를 설계하고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자체가 또 하나의 업무입니다. "운영 우선"이라는 방향은 유효하지만, 실행의 출발점과 세부 방식은 규모와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소규모 현장에서 운영 우선을 시작하는 방법
비바테크 메시지를 소규모 현장에 맞게 줄이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현실적인 시작은 주간 반복 업무 하나를 지목하는 것입니다. 매주 같은 형식으로 작성하는 보고서, 비슷한 질문에 반복해서 답하는 이메일, 매번 데이터를 옮기는 단순 작업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여러 곳에 동시에 도입하면 어디서 효과가 나고 어디서 안 나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업무에서 체감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AI에 주는 지시문을 고정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매번 새로 작성하면 결과가 들쭉날쭉해서 무엇이 잘 작동하고 무엇이 안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잘 작동한 지시문은 메모해 두고 재사용합니다. 2주 단위로 결과를 보면서 지시문을 조금씩 수정합니다. 이 반복이 없으면 AI 도구는 한번 써보고 끝나는 실험에 머뭅니다.
데이터 위치를 짚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AI 주권 논의가 유럽 정부 수준에서는 정책 협상이지만, 소규모 사업자에게는 "내 고객 정보와 계약 데이터가 어느 서비스 서버에 저장되는가"라는 실용적인 질문입니다. 지금 외부 AI 서비스에 민감한 데이터를 넣고 있다면, 그 서비스의 이용약관이 바뀌거나 서비스 자체가 중단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한번 따져볼 시점입니다.
경쟁 전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 경영 이론서는 운영 효율성과 포지셔닝을 구분합니다. 운영 효율성은 같은 일을 더 잘하는 것이고, 포지셔닝은 경쟁자와 다른 위치에 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같은 도구로 같은 방향을 향해 뛰다가 소모전에 빠집니다. AI 도구 도입은 운영 효율성 영역입니다. 그것이 자신만의 포지션과 연결될 때 지속 가능한 차이가 생깁니다.
좋은 모델을 쓰는 것과 그 모델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것은 다른 능력입니다. 전자는 구독료로 살 수 있지만, 후자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과 반복 점검의 습관에서 나옵니다. 비바테크 2026이 보여준 것은 그 차이가 이제 전 세계 기업들의 공통 고민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소규모 현장이라고 해서 그 고민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