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콘텐츠 에이전시가 있습니다. 직원 열두 명 규모입니다. 2024년 들어 신입 작가를 뽑지 않기로 했습니다. AI 초안 도구를 쓸 줄 아는 3년 경력자 한 명이 초안 작업만 놓고 보면 신입 셋보다 빠릅니다. 교육 기간도 없습니다. 그 에이전시 대표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반 년 뒤, 그 에이전시는 4년 경력 작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원자 수가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력 4년이라고 해도 기초 원고 감각이 예전 세대의 4년 경력자와 달랐습니다. 분석해 보니 이유가 보였습니다. 그 지원자들도 신입 시절에 반복 작업 기회가 이미 줄어 있었던 세대였습니다.
이것은 한 에이전시의 사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행 조사국이 2026년 8월 발표한 BOK 이슈노트는, 이 구조가 한 회사의 이야기가 아님을 수치로 보여줍니다.
수치가 가리키는 방향이 처음 예상과 다릅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 청년층(15~29세) 일자리가 28만 5천 개 줄었습니다. 이 수치만 보면 경기 침체나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석과 어긋나는 수치가 하나 있습니다. 감소분의 94%, 즉 26만 8천 개가 'AI 노출도'가 높다고 분류된 업종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같은 기간, 같은 업종에서 50대 일자리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경기 침체가 이유였다면 연령대 구분 없이 같이 줄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AI 도구가 확산된 업종에서 특정 연령대의 특정 업무가 선택적으로 줄었습니다. 신입과 주니어가 맡던 반복 사무 업무입니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그림입니다. 이 수치를 조금 더 추적하면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50대가 같은 업종에서 늘어난 이유를 되짚어 봅니다
AI 도구를 도입한 조직이 50대를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AI 결과물을 걸러냅니다. 고객의 요구를 문서 너머에서 읽습니다. 어떤 방향이 예산과 일정 안에서 현실적인지 감각으로 압니다. 조직은 이 능력을 '경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경험은 어디서 왔는가를 물으면 답이 하나로 수렴합니다. 20대에 전표를 쳤고, 보도자료를 받아 정리했고, 기초 데이터를 손으로 만졌습니다. 잘못된 보고서를 냈다가 지적받았고, 방향을 섣불리 정했다가 프로젝트가 엎어졌습니다. 그 실수들이 쌓여서 '이 방향은 위험하다'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AI가 지금 흡수하고 있는 업무는 기업 입장에서 저부가가치 업무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숙련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반복 업무는 실수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작은 실수를 허용하는 환경에서 수백 번 시도하면서 기준이 몸에 붙습니다.
AI가 그 공간을 흡수한다면,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이 공백은 지금이 아니라 10년 뒤에 드러납니다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당장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50대가 현장에 있는 동안은 괜찮습니다. AI 도구의 생산성도 계속 오릅니다. 단기 재무 지표로 보면 신입을 배제하는 결정이 옳아 보입니다.
그런데 10년 뒤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의 30대 초반, 반복 업무 기회가 이미 줄어든 채 경력을 쌓고 있는 세대가 중간관리자 자리에 올라갑니다. AI가 초안을 내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1차 분석을 냅니다. 그 결과물을 최종 검토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자리에 누가 앉습니까.
AI가 만든 초안은 그럴듯합니다. 어디가 틀렸는지 한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 과정을 거쳐본 적 없는 사람은 논리가 빠진 부분, 수치가 맞는데 해석이 비틀린 부분을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그 감지 능력은 수백 번의 반복 실패에서 옵니다.
이것은 확인된 결론이 아닙니다. 추정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있습니다. 비용과 결과 사이의 시차가 길수록 의사결정자가 그 연결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결정들이 그 종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AI를 교육 재료로 전환한 조직들이 선택한 방식
모든 조직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일부 컨설팅 회사들은 AI를 신입 배제의 근거가 아니라 교육 도구로 씁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신입이 AI 도구 없이 먼저 작성합니다. 그 뒤 AI가 같은 주제로 초안을 만들면 두 결과물을 나란히 놓고 비교합니다. 어디가 다른가, 왜 다른가를 분석하는 것이 교육 내용입니다. 반복 업무를 없애는 대신, 반복 업무를 비교 재료로 재설계했습니다.
일부 미디어 조직은 AI가 처리할 수 있는 기사와 사람이 써야 하는 기사를 명시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입에게 후자를 맡깁니다. 덜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그 조직은 3년 후의 편집 감각이 어디서 나올지를 지금 설계하고 있는 겁니다.
이 두 방식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결과가 확인되려면 최소 5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AI 도입으로 이번 분기 생산성이 올라가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구조가 5년 뒤 그 역할을 할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입니다.
1인 사업자와 솔로 PM이 다르게 읽어야 할 이유
이 구조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혼자 또는 소수로 일하는 구조에서는 더 빨리 체감됩니다.
1인 사업자나 솔로 PM은 협력자를 외부에서 구합니다. 경력 3~4년을 선호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력 1~2년 수준의 협력자를 써본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AI 도구 없이 기초를 처리하는 능력이 예전 경력 1~2년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체감이지 수치로 검증된 얘기는 아닙니다. BOK 이슈노트의 데이터는 그 체감의 구조적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실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협력자를 평가할 때 경력 연수보다 구체적인 작업 샘플이 더 정직한 지표가 됩니다. 특히 AI 도구 없이 만든 샘플과 AI 도구로 만든 샘플을 모두 요청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AI 보조 없이 기초를 처리할 수 있는가와 AI 결과물을 걸러낼 수 있는가는 서로 다른 역량입니다. 지금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준은 3년 전에는 불필요했습니다. 경력 3년이면 대체로 기초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BOK 이슈노트가 제기한 문제는 청년 고용 정책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같은 데이터를 실무 단위로 읽으면, 어떤 기준으로 협력자를 평가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나눌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그 질문에 확정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설계가 5년 뒤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아직 관찰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