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는 올랐는데 가격표는 그대로입니다

재료비와 인건비가 다 올랐는데도 대표 상품 가격을 올리자니 단골이 떠날까 두려워 몇 달째 가격표를 못 고치는 사장님이 많습니다. 이번 주 애플 분기 실적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바로 이 고민에 대한 애플식 답입니다. 어떤 상품은 동결하고 어떤 상품은 인상하는, 제품별 가격 전략입니다.

애플은 어디는 동결하고 어디는 올렸습니다

애플의 이번 3분기 매출은 1,094억 달러로 전년보다 16% 늘며 6월 분기 기준 역대 최고였고, 순이익도 298억 달러로 덩치 자체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속사정은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기기에 들어가는 메모리 칩 값이 50달러에서 200달러로 네 배 뛰면서 기기 마진이 49.3%에서 47.9%로 내려앉았습니다. 원가 폭등 국면에서 애플의 선택은 둘로 갈렸습니다. 경쟁사들이 줄줄이 값을 올리는 동안 간판인 iPhone 가격은 묶어 두었고, 그 덕에 판매가 3% 성장하며 약 20%의 시장점유율을 지켰습니다. 올린 쪽은 따로 있습니다. iPad와 MacBook 가격, 그리고 서비스 구독료입니다. 유료 구독이 1억 5천만 건에 이를 만큼 기반이 탄탄했기에, 구독료 인상이 이탈로 번질 위험은 작다고 본 셈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드러났습니다. 이익을 떠받치던 영업이익률 70%대의 고마진 서비스가 게임 카테고리 부진과 App Store 결제 수수료 인하 강제를 동시에 만나 성장이 둔해졌고, 매출 목표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경영진은 콘텐츠 일정의 공백을 이유로 들었지만, 규제와 게임 부진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더 무겁게 읽힙니다.

상품마다 맡은 역할이 다릅니다

이 선택의 사업 논리는 이렇습니다. iPhone은 고객을 붙잡아 두는 상품입니다. 원가가 올랐다고 여기 가격을 올리면 점유율이 흔들리고, 그 위에 얹혀 있는 구독과 부가 매출까지 함께 무너집니다. iPad·MacBook·구독 서비스는 이익을 회수하는 상품입니다. 이쪽의 인상은 고객 이탈로 직결되지 않으면서 원가 충격을 흡수해 줍니다. 원가 상승분을 모든 상품에 고르게 전가하는 대신, 역할에 따라 다르게 배분한 것입니다.

이번 분기는 이 전략의 약점도 함께 보여 줬습니다. 이익 회수를 맡은 축이 매출 비중 26.3%의 서비스 하나에 쏠려 있었는데, 그 축이 규제와 게임 부진으로 흔들리자 실적 구조 전체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제품별 가격 전략은 역할을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익을 맡는 축이 몇 개인지까지 따져야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내 상품에도 역할을 나눠 줄 수 있습니다

규모는 달라도 원리는 같습니다. 먼저 내 상품을 역할로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손님을 데려오고 붙잡아 두는 상품과 실제 이익을 남기는 상품은 다릅니다. 디자이너라면 첫 로고 작업이 전자, 유지보수 계약이 후자일 수 있고, 카페라면 아메리카노가 전자, 디저트와 원두 판매가 후자일 수 있습니다. 상품마다 남기는 이익까지 함께 적어 보면 구분이 한층 선명해집니다. 이 구분이 제품별 가격 전략의 출발점입니다.

다음으로, 원가가 오를 때 간판 상품 가격부터 건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손님이 가격을 정확히 기억하는 상품이 간판이고, 가격을 잘 비교하지 않는 상품이 이익 담당입니다. 인상은 이탈 위험이 낮은 후자, 곧 부가 상품·옵션·정기 계약에서 먼저 시도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간판을 지켜야 그 위에 쌓이는 부가 매출도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익을 맡는 상품이 하나뿐이라면 지금이 늘릴 때입니다. 애플 정도의 회사도 이익 축 하나가 흔들리자 분기 전체가 의심받았습니다. 1인 사업자에게 이런 충격은 훨씬 직접적으로 옵니다. 정기 관리든 소모품이든 교육이든, 이익을 나눠 맡을 두 번째 축을 미리 만들어 두면 원가 충격 한 번에 사업 전체가 흔들리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종이 한 장이면 됩니다

종이를 두 칸으로 나눠 왼쪽에는 고객을 데려오는 상품을, 오른쪽에는 이익을 남기는 상품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른쪽 칸이 비어 있거나 항목이 하나뿐이라면, 다음 원가 인상이 닥치기 전에 손봐야 할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