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로브 캐피털의 조슈아 쿠슈너가 2026년 8월, 처음으로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냈습니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AI 투자를 집행해온 VC가 직접 쓴 이 서한은 한 가지 경고를 담고 있었습니다. "AI 기회는 거대합니다. 그러나 설렘이 투자 규율을 약화시키는 것은 중대한 실수입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 사이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똑같은 오류가, 훨씬 작은 규모에서, 매주 반복됩니다. AI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는 1인 사업자와 소규모 팀 안에서입니다.
문제보다 도구가 먼저 들어올 때
AI 도구를 채택하는 과정은 대개 이런 순서로 진행됩니다. 누군가의 후기나 유튜브 영상에서 도구를 봅니다. 생산성이 몇 배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무료 체험을 시작하고, 두 주 뒤에 유료로 전환합니다.
이 순서 어디에도 "지금 내가 막혀 있는 업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없습니다.
문제를 먼저 적지 않으면, 도구가 역으로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Claude를 구독하면 "AI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생깁니다. Midjourney를 쓰면 "이미지가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이 생깁니다. 도구가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업무가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도입 순서가 뒤집히면서 조용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막힌 업무 단계를 특정한 뒤에 도구를 고릅니다
문제를 먼저 특정하는 도입은 다른 순서로 시작합니다. 지금 가장 느린 업무 하나를 고릅니다. 그 업무가 왜 느린지, 어느 단계에서 막히는지를 씁니다. 그런 다음 AI가 그 단계에 실제로 끼어들 수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뉴스레터를 매주 쓰는 1인 사업자라면, 느린 이유가 소재를 수집하는 단계인지, 초안을 쓰는 단계인지, 편집하는 단계인지에 따라 필요한 도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소재 수집이 막힌 사람에게 문장 생성 도구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초안 생성이 막힌 사람에게 이미지 도구는 무관합니다.
이 구분이 생기면, 도구를 쓰지 않는 결정도 가능해집니다. "이 단계는 AI가 들어와도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서기 때문입니다. 구분이 없으면, 구독이 늘어나도 실제 막힌 단계는 그대로 남습니다.
쿠슈너의 투자 원칙을 도구 도입에 옮기면
쿠슈너가 말한 투자 규율은 판단을 내리기 전에 기본 가정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이 기업이 실제로 어떤 시장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충분한가. AI라는 트렌드와 관계없이 이 투자가 성립하는가.
도구 도입에 이것을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이 도구가 실제로 어떤 내 업무 단계를 처리하는가. 그 단계를 처리하는 품질이 내가 직접 할 때와 비교해 충분한가. AI라는 트렌드가 없어도 이 구독이 성립하는가.
마지막 질문이 가장 날카롭습니다. "AI라는 트렌드와 관계없이"라는 조건을 붙이면, 도입하려던 도구들이 상당수 걸립니다. 트렌드가 없다면 이 도구를 선택했겠는가. 아니라는 답이 나오면, 그 도구는 업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문제 정의 한 줄이 잘못된 구독을 걸러냅니다
도입 전에 문제를 한 줄로 쓰는 습관이 생기면, 구독 결정의 속도가 줄어듭니다. 비효율처럼 느껴지지만 반대입니다. 잘못 도입한 도구를 익히는 시간, 업무 흐름을 재조정하는 시간,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모두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구독료보다 그 시간이 더 비쌉니다.
벤처 투자자들이 수천억 원 규모의 의사결정에 사용하는 점검 기준이 월 2~3만 원의 구독 결정에서 작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점검 없이 통과되기 쉽습니다. 금액이 작고, 해지가 간단하고, 대안이 많다는 이유로 기준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작은 구독 결정들이 쌓여 업무 흐름을 흐트러뜨립니다.
그런데 문제를 먼저 적는 것은 도구를 고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지금 무엇이 막히는가'라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려면, 자신의 업무를 한 발짝 떨어져 봐야 합니다. AI가 이 과정을 대신해주지는 않습니다. 도구 없이도 할 수 있는 작업이고, 도구를 쓰기로 했다면 그 전에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