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기준 국내 해외직구 시장 규모는 6조 원을 넘겼습니다. 그 시장에서 운영 인력 4명이 누적 거래액 100억 원을 처리한 스타트업이 나타났습니다. 크로스보더 커머스 스타트업 모드픽의 이야기입니다. 통상 커머스 기업 100억 원 매출에는 CS 담당, 물류 담당, 상품 담당, 운영 매니저 등 수십 명 규모의 팀이 붙는 게 보통입니다. 모드픽은 그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쪽에 베팅한 셈입니다. AI 에이전트가 상품 발굴·통관 처리·고객 응대를 직접 수행하도록 시스템을 짰기 때문에, 인력 수식 자체가 달라졌다고 봅니다.

이 사례가 1인 사업자에게 즉각적인 자문을 유발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렇다면 내 업무 중 어디까지 에이전트로 넘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는 미래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I가 먼저 들어간 자리

모드픽이 선택한 영역은 해외 구매대행입니다. 한국 소비자가 해외 쇼핑몰 상품을 구매할 때, 현지 구매·통관·배송·CS까지 전 과정을 대리하는 서비스입니다. 이 시장의 핵심 병목은 크게 세 곳에 있습니다. 상품 발굴(어느 나라의 어떤 상품이 한국에서 팔릴 것인가), 통관 서류(국가별 품목 분류 코드와 규정의 복잡성), 그리고 CS(언어 장벽과 반품·환불 처리의 반복성)입니다.

세 가지 모두 고숙련 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던 영역입니다. 좋은 상품을 고르는 안목, 나라마다 다른 통관 규정을 꿰는 지식, 외국어 CS를 처리하는 능력. 이 세 가지를 확보하기 위해 커머스 기업들은 팀을 키웁니다. 모드픽은 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 세 영역을 AI 에이전트가 처리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사람은 그 위에서 판단하는 구조로 갔습니다.

상품 발굴 단계에서는 데이터 기반 수요 예측으로 후보군을 좁히고, 통관에서는 품목 분류 코드 식별과 서류 생성을 자동화하고, CS에서는 다국어 응대와 반품 처리 흐름을 표준화했습니다. 2026년 현재 모드픽은 카카오벤처스와 이화여대기술지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하고, 올해 하반기 자율 운영 커머스 플랫폼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투자 유치 소식 자체보다 주목할 것은 "운영 인력 4명, 누적 판매액 100억 원"이라는 조합이 던지는 함의입니다. 이 숫자가 유효하다면, 커머스 운영에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여겨지던 영역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재분류될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 숫자를 그대로 믿으면 놓치는 것들

인상적인 수치이긴 합니다만, 몇 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첫 번째는 수치의 정의입니다. 누적 판매액과 연간 매출은 다릅니다. 100억 원이 창업 이후 전체 누적 수치라면, 기간에 따라 연 매출 규모는 훨씬 작을 수 있습니다. 투자 보도에서는 수치를 최대치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100억 원이 몇 년에 걸쳐 쌓인 숫자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AI가 처리한다"는 말의 실질입니다. 에이전트가 통관 서류를 생성하고 CS에 답한다고 해도,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검수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통관 오류는 벌금과 화물 억류로 이어지고, CS 오류는 플랫폼 패널티와 반품 분쟁으로 직결됩니다. 운영 인력 4명이 실제로 하는 역할이 에이전트 결과의 검토와 예외 상황 처리라면, 이 구조는 "사람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사람이 더 고밀도로 일한다"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는 업종의 특수성입니다. 구매대행은 제조나 서비스업과 달리, 재고를 직접 보유하지 않고 수요가 생겼을 때 조달합니다. 반복 처리가 가능한 패턴이 비교적 많은 업종이기도 합니다. 통관 코드와 배송 조건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 규칙 자체는 문서화되어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학습하기 좋은 구조적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이 반박들이 모드픽 사례의 핵심을 무력화하지는 않습니다. 반복성이 높고 규칙 기반으로 처리 가능한 업무를 에이전트로 이관할 수 있으며, 이 실험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는 유효합니다. 질문은 "가능한가"가 아니라 "내 업무 중 어디가 해당하는가"로 이동했습니다.

이 구조에서 1인 사업자가 먼저 해야 할 일

모드픽의 운영 구조를 추상화하면 하나의 패턴이 보입니다. 업무를 정보 수집·규칙 적용·결과 생성의 단계로 분해하고, 그 단계를 에이전트에 넘기는 것입니다. 상품 발굴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패턴을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통관 처리는 규정을 코드화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과정입니다. CS 응대는 요청을 분류하고 정형 답변을 생성하는 과정입니다.

이 세 작업은 모두 반복되고, 상당 부분 규칙화될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징은 비단 커머스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콘텐츠 디렉터라면 키워드 리서치, 경쟁사 분석, 초안 생성의 일부가 여기 해당합니다. 솔로 PM이라면 회의록 정리, 기능 명세 초안, 상태 리포트 작성이 해당할 수 있습니다. 1인 창업자라면 고객 문의 분류, 계약서 초안 작성, 리드 발굴 첫 단계가 해당합니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내 일과에서 어느 비중이 "정보를 모으고, 규칙에 따라 처리하고, 결과물을 전달하는"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에이전트 도구를 먼저 고르는 것보다 이 분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 업무 흐름에서 어떤 단계가 반복성이 높고, 어떤 단계가 맥락 판단을 요구하는지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모드픽이 에이전트를 효과적으로 적용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분리를 명확하게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통관 서류 자체를 에이전트가 처리하지만, "이 상품을 한국 시장에 들여오는 게 사업적으로 맞는가"라는 판단은 여전히 사람이 합니다.

맥락이 없는 규칙 처리는 에이전트에, 규칙이 없는 맥락 판단은 사람에게. 이 역할 분리를 업무 단위로 내려와 실제로 그어보는 것이 지금 1인 사업자에게 필요한 첫 번째 작업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업무 해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도구를 먼저 받아들이기 전에 내 일을 한 번 해체해 보는 작업입니다.

모드픽의 4명은 에이전트가 처리한 결과를 검토하고, 새 카테고리로 확장할 시장을 판단하고, 투자자와 파트너십을 협상합니다. 반복 처리를 넘기고 난 뒤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가 사업자 각자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에이전트가 실수할 때 맥락을 보고 수정하는 사람, 데이터가 보여주지 않는 시장 신호를 읽는 사람, 고객의 불만에서 실제 문제를 뽑아내는 사람. 이 역할들은 규칙으로 자동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럴 것입니다.

그 자리를 미리 설계해 두지 않으면, 도구를 도입해도 생산성이 아니라 혼란만 늘어납니다. AI가 처리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그 영역 바깥에 있는 판단의 질이 사람의 역할을 결정합니다. 반복이 사라진 뒤에 남는 자리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를 에이전트 도입 이전에 먼저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