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션의 프로덕트 & 디자인 리드 맥스 쇼닝(Max Schoening)이 인터뷰에서 꺼낸 이 문장은 짧지만 불편합니다. AI 코딩 툴이 쏟아지고, 누구나 프롬프트 몇 줄로 앱을 뚝딱 만들어낸다는 기사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결과물의 양"과 "결과물의 질"이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도구가 실행을 담당하는 순간, 인간에게 남는 건 무엇인지 묻는 것입니다."바이브 코딩(vibe coding)은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소프트웨어는 아니었습니다."
이 질문은 비단 개발자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1인으로 사업을 운영하거나 소수 팀으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이라면, AI 도구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 앞에서 무엇을 물을 수 있느냐가 이미 핵심 역량이 되고 있습니다. 도구의 가짓수가 문제가 아니라, 도구를 쥔 사람의 태도가 문제라는 뜻입니다.
노션은 "훔친 차처럼 몰아라"고 말합니다
맥스 쇼닝은 레니 라치츠키(Lenny Rachitsky)의 뉴스레터 인터뷰에서 노션 내부의 제품 개발 문화를 설명하며 흥미로운 표현을 씁니다. "훔친 차처럼 몰아라(drive it like it's stolen)." 이 말은 스타트업 세계에서 이따금 쓰이는 표현이지만, 노션이 쓰는 맥락은 조금 다릅니다. 빠르게 가라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자원과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직접 판단하고 움직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 방향을 만들어가는 태도, 즉 주도성(agency)을 가리킵니다.
그가 지적하는 핵심 현상은 이렇습니다. AI 도구가 보편화되면서 기술(skill)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조금 익히면 초급 개발자도, 초급 디자이너도, 초급 카피라이터도 이전보다 훨씬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결과물의 양은 늘었는데 품질의 천장도 동시에 낮아지는 경향이 생긴 것입니다. 바이브 코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AI가 요청을 받아 코드를 작성하고, 사람은 그 코드가 돌아가는지 확인합니다. 그런데 "돌아간다"와 "좋은 코드다"는 전혀 다른 평가입니다. 작동 여부는 AI가 판단할 수 있지만, 유지보수 가능성, 확장성, 사용자 경험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인간의 판단 영역입니다.
쇼닝은 여기서 주도성의 정의를 확장합니다. 주도성이란 단순히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올바른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AI가 실행을 담당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선명하게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와 "이 결과물이 충분한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평준화되면 남는 건 태도입니다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를 기술(Skill), 지식(Knowledge), 태도(Attitude)로 나누어 볼 때, AI가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대체하는 영역은 기술과 지식입니다. 특정 언어의 문법을 외우지 않아도 코드를 쓸 수 있고, 특정 분야의 정보를 직접 조사하지 않아도 요약된 인사이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빠른 속도로 상품화(commoditize)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체감합니다.
그렇다면 태도는 어떨까요? 태도는 훨씬 더 완고한 영역입니다. AI가 "이 결과물을 더 개선해야 하는가"를 묻는 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결과물 앞에서 "이 정도면 됐다"고 넘어갈지, "뭔가 어색하다"는 감각을 붙잡고 파고들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합니다. 쇼닝이 말하는 주도성은 이 판단의 반복 속에서 쌓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이브 코딩 현상이 다시 의미를 갖습니다.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됐을 때,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선택을 보면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한쪽은 AI가 만들어준 것을 그대로 배포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갑니다. 다른 한쪽은 AI가 만든 결과물을 출발점으로 삼아, 부족한 지점을 직접 고치고 의도를 더합니다. 결과물의 수는 첫 번째 부류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두 번째 부류의 작업물이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이것은 게으름과 성실함의 차이가 아닙니다.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과, 도구가 제시하는 프레임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AI 도구가 발전할수록 더 크게 벌어집니다. 도구가 더 잘하게 될수록, 그 도구에게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 아는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쇼닝이 노션에서 구성원들에게 강조한다는 "주도성을 키워라(cultivate agency)"는 메시지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판단하는 자세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AI 도구가 나올 때마다 기술 목록을 업데이트하는 사람은 늘 조금씩 뒤처집니다. 하지만 어떤 도구를 써도 "이 결과물이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묻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도구가 바뀌어도 쓸모가 유지됩니다.
1인 사업자에게 이 논의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
혼자 혹은 소수로 일하는 사람에게 주도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입니다. 팀이 없으면 판단을 위임할 곳도 없습니다. 그러나 AI 도구가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주도성이 흔들리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도구가 제안하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고, 결과물이 나오면 배포하고, 다음 도구를 시도합니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적용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AI가 결과물을 냈을 때,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를 묻고 있는지 점검해보세요. 단순히 "이게 요청한 것인가"와는 다른 질문입니다. 요청과 의도는 종종 일치하지 않습니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물이 나온 뒤 그 결과물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지 다시 보는 습관이 주도성의 출발점입니다.
다음으로, 도구를 선택할 때 "이 도구가 내 판단을 보조하는가, 대체하는가"를 구분해보세요.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는 내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결론에 도달하도록 돕습니다. 판단을 대체하는 도구는 내가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줍니다. 후자가 편하게 느껴질수록, 실제로는 판단 근육이 약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에서 내가 책임지는 부분은 어디인가"를 명시해보세요. AI에게 시킨 것과 내가 직접 결정한 것을 구분하는 작업입니다. 1인 사업자에게 브랜드는 판단의 집합체입니다. 어떤 것을 만들고, 어떤 것을 거절하고, 어떤 방향으로 고쳤는지가 쌓여서 고객이 인식하는 당신이 됩니다. 그 판단들을 AI가 대신했다면, 당신의 브랜드는 점점 누구의 것도 아닌 평균값으로 수렴합니다.
쇼닝이 강조하는 주도성 개발은 특정 도구를 배우거나 특정 스킬셋을 추가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 문제가 내 문제인가"를 느끼고, "이 결과물이 충분한가"를 판단하고, "여기서 내가 선택한다"는 자세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습은 AI 도구를 쓰지 않을 때도, AI 도구가 완전히 달라진 뒤에도 유효합니다.
AI 도구가 실행을 담당하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실행할지 결정하는 판단이 사람에게 남겨진 유일한 일이 됩니다. 도구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보다 도구 앞에서 어떤 자세로 서느냐가, 1년 뒤 당신의 작업물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