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이 한 줄도 없는 상태에서 회사를 팔았습니다. 에인절 투자자 알렉산더 카르도스-니임Alexander Kardos-Nyheim의 경우입니다. 그는 직접 AI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매출이 발생하기 전에 매각을 마쳤습니다. 이후 그는 다른 AI 스타트업을 심사하는 자리에 앉아, 자신이 겪은 매각 경험에서 끌어낸 평가 기준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어떻게 수익 없이 팔렸을까요. 그가 제안하는 답은 이렇습니다. 인수자가 산 것은 제품이 아니라 기술의 방어력이었습니다. 이 구분이 한국 창업자에게 불편한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나는 지금 AI 위에 앱을 얹고 있는가, 아니면 AI 자체를 만들고 있는가.
투자자가 긋는 선: 앱인가 기반인가
카르도스-니임이 AI 스타트업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제품은 기존 AI 플랫폼 위에 얹은 레이어인가, 아니면 AI 그 자체를 다루는가." 이 질문 뒤에 있는 논리는 명확합니다. OpenAI, Google, Anthropic 같은 플랫폼이 제공하는 API를 가져다 서비스를 만드는 방식은, 플랫폼이 기능을 한 단계 확장하는 순간 대체됩니다.
그가 장기 가치를 높게 보는 AI 스타트업은 다른 층위에 있습니다. 모델 훈련, 인프라 설계, 새로운 추론 방식처럼 기술적으로 깊은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팀입니다. 이런 회사는 플랫폼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플랫폼 자체가 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 구분이 투자 심사에서 주요 변수가 된 것은 최근 2~3년 사이입니다. AI가 빠르게 범용화되면서 "AI를 쓰는 것"의 진입 장벽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누구나 API를 호출해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자 역설적으로, API 위에 얹힌 서비스들의 방어력이 동시에 낮아졌습니다. 경쟁자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이 아래에서 가져가는 가치와, 서비스가 위에서 지키는 가치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논리는 대규모 팀에만 해당한다는 반론
카르도스-니임의 프레임에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충분한 기술 인력과 자본, 그리고 수익 없이도 버틸 수 있는 런웨이입니다. 모델 훈련이나 추론 인프라를 다루는 AI 회사를 한국의 1인 사업자나 소규모 팀이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기반 AI가 아니면 가치 없다"고 읽으면, 대부분의 소규모 창업자는 뭘 해도 안 된다는 결론으로 빠집니다.
실제로 이 기사가 겨냥하는 독자는 실리콘밸리형 투자를 받은 팀이거나, 에인절 라운드를 타진 중인 스타트업입니다. 1인 사업자나 소규모 기획자가 "기반 기술을 개발하라"는 처방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고, 따르려다 자신의 실제 강점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창업자가 기반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읽으면, 이 글은 한국 소규모 사업자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것은 아깝습니다. 카르도스-니임의 평가 질문에는 규모와 무관하게 쓸 수 있는 층위가 있습니다. "내 사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투자자의 언어를 창업자의 언어로 바꾸면
벤처캐피탈리스트 12명의 투자 결정을 추적한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공통된 패턴이 하나 보입니다. 투자자는 스케일보다 방어력을 삽니다. 팀 규모나 매출 숫자보다, "이 팀이 없으면 이 서비스가 존재할 수 없는가"를 먼저 따집니다. 반대로 "이 팀이 사라져도 다른 팀이 3개월 안에 복제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예"라는 답이 나오면, 그 사업은 규모 불문하고 방어력이 약합니다.
이 질문을 한국 1인 사업자 맥락으로 옮기면 몇 가지 자가 점검 항목이 나옵니다.
ChatGPT나 Claude 같은 플랫폼이 내 서비스와 같은 기능을 직접 제공하면 내 서비스는 사라지는가. 단순 요약·번역·텍스트 생성 도구라면 플랫폼 업데이트 한 번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답이 "예"라면, 서비스에서 무엇을 쌓고 있는지 다시 들여다볼 시점입니다.
내가 쌓아온 데이터, 관계, 커뮤니티가 AI 없이도 독립적으로 가치를 만드는가. 그렇다면 AI는 그 위에 얹은 효율 도구입니다. 이런 방식은 플랫폼이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AI가 없어도 고객이 찾아오는 이유가 있는 사업에서, AI는 비용을 줄이거나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다루는 도메인이 AI가 아직 잘 풀지 못하는 영역인가. 특정 업종의 현장 지식, 고객 인터뷰에서 얻은 맥락, 수년간 누적된 업계 관계처럼 AI가 학습 데이터로 쓸 수 없는 것들이 여기 해당합니다. 이 영역에서 직접 데이터를 만들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기반 기술 없이도 방어력을 갖춥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점검을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해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AI가 없어도 이 사업이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면 AI가 있기에 처음으로 가능해졌는가." 전자라면 AI는 효율을 높이는 수단입니다. 후자라면 AI가 그 사업의 뼈대입니다. 카르도스-니임이 투자자로서 찾는 것은 후자에 해당하는 팀이고, 그 잣대는 1인 사업자의 자기 진단에도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카르도스-니임이 매출 없이 회사를 팔 수 있었던 것은, 그 회사의 기술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인수자에게 줬기 때문입니다. 수익보다 방어력이 먼저 팔린 셈입니다. 한국의 창업자와 기획자 대부분은 기반 AI 기술을 직접 만들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사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은 규모와 관계없이 지금 당장 꺼내 쓸 수 있습니다. AI 서비스가 쏟아지는 지금, 그 앱이 어떤 층위 위에 서 있는지를 먼저 짚는 사람이 조금 더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