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브랜드를 세 개 더 만들었습니다. 투자자를 한 명도 두지 않고서. 같은 시기에 미국 이바이크 시장에서 VC 자금을 받은 경쟁사 여럿은 파산 신청서를 냈습니다. 렉트릭Lectric​이 미국 이바이크 시장에서 걸어온 경로는 창업 생태계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냅니다. 외부 자금 없이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확장하는가.

이 질문은 한국 1인 창업자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수익을 내기 전에 성장을 사야 한다는 논리, 투자를 받아야 창업이 시작된다는 분위기가 오랫동안 이 생태계를 지배해왔습니다. 렉트릭의 이야기가 그 전제를 단번에 뒤집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이 더 오래가는지를 보여주는 실제 데이터로는 읽힙니다.

VC 자금이 넘쳤던 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2020년대 초, 미국 이바이크 시장은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무대였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 도심 모빌리티 전환, 팬데믹 이후 야외 활동 수요 증가가 겹쳤습니다. 벤처캐피털 자금이 이 시장으로 쏠렸고, 수십 개의 스타트업이 나타났습니다.

2024년을 지나면서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VC 자금을 받은 이바이크 스타트업들이 잇달아 문을 닫았습니다. 공통된 흐름이 있었습니다. 투자금으로 마케팅과 규모를 먼저 키웠지만, 자전거 한 대를 팔 때 실제로 얼마가 남는가를 먼저 따지지 않았습니다. 단위당 경제성(unit economics)이 작동하기 전에 생산 설비를 갖췄고, 고객 숫자가 확인되기 전에 유통망을 깔았습니다. 투자금이 그 검증 기간을 길게 늘려줬지만, 실제로 수요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다음 라운드가 막히자 전체 구조가 흔들렸습니다.

렉트릭은 처음부터 다른 조건에서 출발했습니다. 외부 투자를 받지 않았고, 자체 현금흐름으로만 운영했습니다. 팔리지 않는 제품을 오래 안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에, 팔리는 가격대를 먼저 확정하고 그 지점에서 실제 거래가 일어나는지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2026년 초, 이 회사는 6개월 사이에 신규 브랜드 세 개를 론칭했습니다. 경쟁자들이 정리되는 시점에 오히려 시장 안에 입구를 더 만든 것입니다.

투자금이 성장을 보장하지 못한 이유

투자자 자금이 성장 속도를 높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자금이 '팔리는 것을 빨리 검증하는 데' 쓰이면 효과가 있습니다. 이바이크 시장에서 파산한 회사들은 대체로 그 자금이 '팔릴 것이라는 가정을 오래 유지하는 데' 쓰였습니다.

경영학의 기초 개념 중 하나로 현금흐름의 양(+)의 상태 유지가 있습니다. 투자를 받은 기업에게 이것은 나중의 목표가 되기 쉽습니다. 부트스트랩 기업에게는 첫날부터의 생존 조건입니다. 이 차이가 외부 조건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다른 결과를 만듭니다.

부트스트랩 기업은 검증을 강제로, 그리고 빨리 합니다. 현금이 없으면 다음 달 운영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강제성이 오히려 사업 모델을 일찍 다듬게 합니다. 팔리는 것을 빨리 찾고, 팔리지 않는 것을 빨리 버리는 방식이 몸에 배면, 경쟁자들이 빠져나가는 시장에서 버틸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도를 단순화하면 안 됩니다. 투자를 받고도 재무 규율을 잘 유지하며 성장한 회사가 있고, 부트스트랩으로 출발했다가 스케일업 타이밍을 놓쳐 시장 주도권을 넘겨준 경우도 있습니다. 기술 인프라 비용이 큰 분야, 초기 규제 장벽이 높은 분야, 선점 효과가 결정적인 분야에서는 부트스트랩 모델이 구조적으로 불리합니다. 반도체, 바이오, 클라우드 인프라에서 이 방식이 통하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합니다. 렉트릭 사례를 소비재 이바이크에서 모든 창업 영역으로 확장 적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시장이 충분히 열려 있고, 가격 경쟁이 가능하며, 초기 투자 규모가 작아도 되는 분야에서만 이 경로가 현실적입니다. 렉트릭이 보여준 것은 그 조건 안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례에서 꺼낼 수 있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투자를 받았다면 그 자금이 검증 속도를 높이는 데 쓰이는지, 미검증 가정을 오래 붙잡는 데 쓰이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투자를 받지 않은 상태라면, 그 강제적 제약이 오히려 사업 모델을 빨리 다듬는 조건이 됩니다.

1인 창업자가 이 이야기에서 꺼낼 수 있는 것

한국 창업 생태계는 투자 유치를 성과의 잣대로 삼는 분위기가 자리해 있습니다. 투자를 받으면 검증된 것처럼, 못 받으면 아직 부족한 것처럼 여기는 시선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1인 사업자나 솔로 창업자에게 VC 자금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이 없고, 기술 특허가 없고, 수백억 단위 시장을 겨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치에서 '어떻게 버티고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실제적인 무게를 가집니다.

렉트릭의 행보에서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순서에 있습니다. 이 회사는 접근 가능한 가격대를 먼저 확정하고, 그 가격대에서 실제로 거래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한 다음, 규모를 늘렸습니다. 고급 포지셔닝은 나중에 별도 브랜드 이름으로 시도했습니다. 핵심 역량은 그대로 두고 포장을 달리해 시장의 다른 입구를 연 것입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자에게도 이 순서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만들기 전에 팔리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팔리는 것을 토대로 다음 단계를 열어가는 방식입니다.

경쟁자가 줄어드는 국면이 실제 기회가 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시장이 어려워지면 많은 플레이어가 빠져나갑니다. 현금흐름이 안정된 사업자는 그 시점에 가격 협상력, 고객 전환, 인재 채용에서 이전에 없던 여건을 만납니다. 버텨내는 것 자체가 포지셔닝이 되는 국면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창업의 내구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외부 조건이 흔들릴 때 실제로 살아남는 쪽을 결정합니다. '지금 투자 없이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은 위축의 질문이 아닙니다. 외부 자금 없이 현금흐름이 돌아가는 구조를 얼마나 빨리 만드는가가 사업의 내구성을 결정합니다. 투자를 받는다면 그 이후에도 이 질문은 남습니다. 투자금 없이 이 사업이 자립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인가. 그 기준이 없으면 다음 라운드를 위해 달리는 것과 사업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VC 자금을 받은 경쟁사들이 문을 닫는 동안, 투자 없이 자력으로 버텨온 한 회사가 브랜드를 세 개 더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현금흐름이 빌린 성장 자금보다 오래간다는 것을, 렉트릭의 사업 이력이 조용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