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팀 쿡이 WWDC 무대에서 OpenAI와의 Siri 협력을 발표했을 때 청중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박수를 친 쪽은 AI가 iPhone 위에 올라온다는 점에 반응했고, 회의적인 쪽은 그것이 자체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구글은 같은 시점에 Gemini를 직접 개발하고 있었고, 메타는 Llama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개발자 생태계를 끌어들이는 중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OpenAI에 130억 달러를 넣은 뒤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애플이 선택한 것은 경쟁자 중 하나의 모델을 빌려 Siri에 붙이는 것이었고, 일부 분석가들은 이것을 뒤처진 추격자의 선택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2026년, 이코노미스트를 포함한 여러 매체가 애플을 AI 경쟁의 다크호스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빠른 모델 개발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기기 생태계가 AI 시대에 다른 종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커졌습니다. 그 논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따라가면, 애플의 선택이 AI를 직접 만들지 않는 한국의 1인 기획자·사업자에게도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지 보입니다.
남의 AI를 올려두는 이유
새 Siri는 기기 위의 소형 모델이 간단한 요청을 처리하고, 더 복잡한 추론이 필요하면 외부 LLM으로 연결됩니다. 어느 외부 모델로 연결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애플이 쥐고 있습니다. 사용자에게는 하나의 인터페이스만 보입니다.
이 설계에서 주목할 것은 선택권의 자리입니다. 2026년 초 기준으로 복수의 AI 제공사가 Siri 뒤쪽 자리를 두고 애플과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여럿 나왔습니다. OpenAI와의 파트너십이 독점인지 아닌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모델을 만드는 회사들이 배포 채널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동안, 애플은 그 경쟁에서 조건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숫자가 이 자리의 무게를 말해줍니다. 2025년 기준 활성 iPhone 사용자는 약 12억 명, iPad·Mac·Watch를 포함한 전체 활성 기기는 18억 대를 넘습니다. OpenAI의 월간 활성 사용자가 약 4억 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Siri에 AI가 올라오는 순간 도달 가능한 사용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됩니다. 사용자는 새 앱을 설치하거나 계정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손에 들고 있는 기기에서 화면을 두드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모델 성능이 아무리 높아도 사용자가 그것을 쓰려면 접점이 있어야 합니다. 애플은 그 접점을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놓았습니다. AI 모델 개발에 수천억 달러를 쓰지 않고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반론도 정확합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안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애플의 전략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은 의존성에서 나옵니다. OpenAI나 Google이 계약 조건을 더 유리하게 바꾸거나, 더 강한 협력사를 찾아 애플을 우선순위에서 내린다면, Siri의 품질은 협력사의 결정에 좌우됩니다. 자체 모델 없이 경쟁하는 것은, 핵심 부품을 외부 공급망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과 비슷한 취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2021년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자동차 생산 전체를 멈춘 일을 떠올린다면, 기술 통제권이 없는 공급망이 어떤 위험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차별화의 문제도 있습니다. Siri가 다른 AI 어시스턴트보다 눈에 띄게 나은 경험을 주지 못한다면, 기기가 많아도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 iOS 사용자 중 Siri 대신 ChatGPT 앱이나 Google 앱을 따로 열어 쓰는 비율이 낮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앞쪽 자리에 있다는 것이 쓰인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구글과 메타가 자체 모델 개발에 계속 투자하는 이유는 이 취약점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배포 채널은 있지만 기술 통제권이 없는 위치가 장기적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그 선택의 배경입니다. 애플의 전략이 지속 가능한지는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기술을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 남은 자리
저는 이 사례가 AI를 직접 만들지 않는 한국의 1인 사업자·기획자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AI를 만드는 쪽과 쓰는 쪽 사이에, 연결하고 전달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기획자와 콘텐츠 디렉터들이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도, 자신이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AI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플이 보여주는 것은, 기술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기술과 사용자 사이 어딘가에 서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인지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특정 독자층이나 커뮤니티에 이미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은, AI 도구를 그 맥락에 맞게 큐레이션하고 엮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카페 창업 뉴스레터 독자가 3,000명 있는 편집자라면, ChatGPT로 메뉴 개발을 어떻게 하는지 안내하는 것이 메뉴 개발 AI 도구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가치를 냅니다. 특정 업계 계약 실무자들의 신뢰를 쌓은 커뮤니티 운영자라면, 계약서 검토에 AI를 어떻게 쓰는지 워크숍을 여는 것이 그 신뢰가 없는 사람보다 훨씬 강한 관계를 만듭니다. AI 도구 자체보다 그 도구와 특정 사용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이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에디터, 기획자, 커뮤니티 운영자가 이미 해온 일을 AI 도구 위에서 다시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시장에서 어느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동일한 기술에서 전혀 다른 경로가 열린다는 것은 경영 전략이 오래 다뤄온 원리입니다. 유통 채널 위에 타사 상품을 올려두고도 협상력을 유지하는 방법, 가치 사슬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가 수익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원리가 그것입니다. AI 도구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지금, 이 원리는 1인 사업자의 포지셔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물론 이 논리가 지금 당장 수익 모델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독자와의 신뢰는 단기간에 쌓이지 않고, 통합자 역할이 항상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현재 연결망이 없다면, 이것은 지금 실행할 전략이 아니라 방향을 잡는 데 쓸 관점입니다. 그리고 그 관점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다음에 어디에 시간을 쌓느냐를 결정합니다.
애플이 다크호스로 불리는 이유는 기술 개발 속도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사용자 접점이 AI 경쟁에서 레버가 됐습니다. 그 레버가 작동하는 원리는 규모와 무관하게 같습니다. 뉴스레터 독자 3,000명도, 특정 업계 커뮤니티의 신뢰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 위에 무엇을 올려두느냐가 다음에 할 질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