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니스 미러를 만든 창업자가 다음으로 고른 건 AI 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브린 풋넘Brynn Putnam​은 거울에 화면을 붙여 홈트레이닝 시장을 개척했고, 그 회사를 룰루레몬Lululemon에 팔았습니다. 그가 새로 시작한 회사의 이름은 'Board'입니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직접 게임을 하며 교류하는 자리를 만드는 스타트업입니다. 투자자들은 이 회사에 자금을 보냈습니다.

같은 시기에 AI 스타트업들이 끌어모은 자금은 분기마다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OpenAI, Anthropic 등 상위 AI 기업들이 수백억 달러 단위의 투자를 받는 동안, 누군가는 주사위를 굴리는 자리에 베팅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방향이 같은 투자 시장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반대 사례 이상의 무언가를 가리킵니다.

사이버덱과 보드게임이 공유하는 한 가지

2024년 말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이상한 DIY 기기 영상이 퍼졌습니다. '사이버덱Cyberdeck​'입니다. 라즈베리파이 같은 소형 컴퓨터와 키보드, 작은 모니터를 결합해 직접 만드는 휴대용 기기입니다. 실용성보다 제작 과정 자체가 목적인 물건이고, 사이버펑크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외형이 특징입니다. 이 영상들이 수십만 뷰를 기록했고, 제작 커뮤니티가 생겼습니다.

Board는 훨씬 상업적인 기획입니다. 풋넘은 미러가 팬데믹 이후 성장을 멈춘 이유를 가까이서 봤습니다. 사람들이 화면 앞에서 혼자 하는 운동은 헬스장이 다시 열리자 빠르게 대체됐습니다. 그 변화에서 미러가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물리적 공간과 타인의 존재였습니다.

사이버덱과 Board는 장르도, 규모도, 사업 모델도 다릅니다. 사용자가 직접 몸을 쓰고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완성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에서 겹칩니다. 화면이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오프라인 수요는 AI 붐과 별개였습니다

이 움직임을 'AI 피로'나 '디지털 반작용'으로 설명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스크린 시간이 늘어난 것과 오프라인 체험 수요가 높아진 것이 같은 시기에 관찰된다는 관찰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반작용으로만 보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수초 수조(水草 水槽)를 직접 조성하는 취미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부터 있었고, AI 붐이 한창인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흙을 고르고 수초를 심어 물속 생태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얻는 것은 설계하고 관찰하며 손으로 결과를 만드는 감각입니다. 이 취미를 가르치는 클래스가 생기고, 그 클래스를 담은 책이 나오고, 커뮤니티가 지속되는 흐름은 알고리즘 변화와 무관하게 이어졌습니다. 반작용이라면 이런 긴 호흡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오프라인 경험 스타트업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근거가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소셜 다이닝 플랫폼, 체험형 미술관, 탈출 게임 기획사들이 투자를 받고 조용히 사라진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체험형 비즈니스는 확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나옵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동시에 배포할 수 있지만 보드게임 행사는 한 도시 한 공간에 묶입니다. 풋넘의 Board가 어떤 사업 모델로 이 구조적 한계를 다룰 것인지는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투자금을 받은 것과 지속 가능한 수익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창업자들의 배경은 살펴볼 만합니다. 풋넘은 기술 기반 하드웨어를 성공시킨 경험자입니다. 사이버덱 제작자들 역시 소프트웨어와 전자공학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기술을 걷어내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면, 이는 기술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기술로 채울 수 없는 지점을 정확히 가리키는 것으로 읽힙니다.

단가는 화면 바깥에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오프라인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오랫동안 확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됐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조건이 달라졌습니다.

온라인 콘텐츠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포화 상태입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채널 수가 크게 늘었고, 조회수 단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오프라인 클래스와 워크숍의 참여 단가는 온라인과 격차를 벌리는 추세입니다. 사람들은 화면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위해 공간으로 이동하고, 그 이동에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커뮤니티 구조도 다릅니다. 유튜브 구독자는 더 흥미로운 채널이 나타나면 이동합니다. 정기적으로 직접 만나는 모임의 참여자는 훨씬 느리게 이탈합니다. 관계가 형성된 공간에서는 콘텐츠 품질 외의 요소가 잔류를 결정합니다.

1인 사업자 입장에서 점검해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서 '직접 만져야 완성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부분을 오프라인 클래스나 소규모 워크숍으로 분리해보는 것입니다. 수초 조성을 가르치는 클래스가 같은 내용의 영상보다 높은 단가를 받는 이유는, 그 과정이 화면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드게임 카페가 같은 게임의 앱 버전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커뮤니티를 운영한다면, 온라인 채널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독립 수익 단위로 재편하는 것도 검토 대상입니다. 멤버십 비용을 내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는 플랫폼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아날로그가 좋다'는 감성만으로는 지불 의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참여자가 무엇을 배우거나 만들거나 연결되는지, 화면 바깥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풋넘이 보드게임을 선택한 건 오프라인이 감성적으로 좋아서가 아닙니다. 화면 앞에서 혼자 하는 운동의 한계를 데이터로 먼저 확인했고, 그다음에 방향을 바꿨습니다. 저는 화면을 꺼야 팔리는 제품이 자리를 잡아가는 이 흐름에서, 이것이 유행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지금 내 사업 안에 오프라인 단가가 가능한 부분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