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이 먼저 바뀌었습니다
500달러짜리 FPV 드론이 수백만 달러짜리 전차를 부수는 장면은 이제 뉴스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상자의 약 80%가 드론 공격에서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참호에 숨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이 있으니까요.
2025년 초 우크라이나는 월 20만 대의 FPV 드론을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2024년 6월에는 세계 최초로 무인체계군을 독립 군종으로 창설했습니다. 러시아도 사정거리 20km의 광섬유 드론으로 보급로를 끊고, 우크라이나는 기관총과 드론을 결합한 복합 전술을 씁니다. 교리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전술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산탄총으로 드론을 잡는 군대
우크라이나가 신병 기본교육 과정을 뜯어고쳤습니다. 51일, 총 402시간. 그중 실기 훈련이 367시간입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 열 배 가까이 많습니다.
눈에 띄는 건 교육의 방향입니다. FPV 드론 방어. 전자전 장비가 먹히지 않는 상황을 대비해 펌프액션 산탄총으로 저공 비행 드론을 요격하는 훈련이 포함됐습니다. 참호 공사도 달라졌습니다. 드론 감시와 열영상 탐지를 피하는 위장술이 공병 교육의 핵심이 됐습니다.
드론을 날리는 법이 아니라, 살아남는 법
주목할 점은 관점의 전환입니다. 드론 '운용법'이 아니라 드론 위협 아래서 '생존법'을 먼저 가르칩니다. 사격 훈련만 137시간, 940발 이상을 실탄으로 쏩니다. 3일간의 야외종합훈련에서는 강행군과 야간 작전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상공의 드론을 감시해야 합니다.
미군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10산악사단은 2025년 초 독일 훈련에서 소대급 부대 안에 감시 드론·배회탄약·대드론 시스템을 함께 편성했습니다.
한국은 어디쯤 와 있습니까
2023년 드론작전사령부가 창설됐습니다. 최초의 합동 전투부대였습니다. 그런데 2026년 1월, 민관군 특별자문위원회가 이 조직의 폐지를 권고했고 결국 폐지되었습니다. 창설 2년 반 만입니다.
국방부는 '50만 드론전사 양성'을 내걸고 교육용 드론 1만 1천여 대 확보, 드론 국산화에 150억 원 투입을 발표했습니다. 숫자는 의욕적입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드론을 '날리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 드론이 지배하는 전장에서 '버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산탄총을 기본교육에 넣은 건, 전자전 장비가 없을 때 병사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기술이 아니라 생존을 가르치는 겁니다.
한국의 드론 기술력은 선도국 대비 5~8년 뒤처져 있다는 평가입니다. 한때 세계 수준이었던 국내 업체 상당수가 문을 닫았습니다.
장비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건 교육입니다. 장비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그 장비가 위협이 됐을 때 대처하는 능력은 훈련으로만 만들어집니다.
우크라이나의 51일 과정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매일 병사를 잃으면서 교범을 고치고 있습니다. 전장의 피가 데이터가 되고, 다음 달 신병 교육에 반영됩니다.
우리에게 그런 절박함은 없습니다. 하지만 절박함이 없다는 게 준비를 미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드론 1만 대를 사는 것보다, 드론 한 대를 직접 만들고 조종할 수 있는 사람. 머리 위에 떴을 때 뭘 해야 하는지 아는 병사 한 명을 기르는 게 더 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