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은 스타트업이 540개 넘게 탄생했습니다. 2019년의 여섯 배였습니다. 제로금리 자금이 넘쳐나던 그 시절, 스타트업에 10억 달러 가치를 붙이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쉬웠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왔습니다.

2022년부터 금리가 오르자, 수백 개의 유니콘이 '좀비' 상태로 빠졌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외형은 살아있습니다. 직원을 두고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수익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공개 상장도 매각도 못 합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좀비 유니콘' 현상은 지금 실리콘밸리가 마주한 가장 불편한 현실입니다.

10억 달러 딱지가 감옥이 되는 순간

제로금리 시대의 벤처캐피털은 구조적으로 위험을 낮게 계산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저금리 환경에서 미래 현금흐름 할인율이 낮아지면, 10년 뒤 수익 전망이 불투명해도 현재 투자 가치는 높아집니다. 같은 성장 스토리가 2015년에는 5억 달러로 책정됐다면, 2021년에는 15억 달러로 다시 계산됩니다. 사업은 그대로인데 숫자만 커진 셈입니다.

그 높은 가치 딱지를 붙인 기업들이 이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 모두 이전 라운드보다 낮은 가치로 투자를 받는 일, 이른바 '다운라운드'를 피하고 싶어합니다. 다운라운드는 신뢰 하락, 직원 이탈, 추가 투자자 기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투자를 받지도 못하고 문을 닫지도 않는 상태로 운영을 이어갑니다. 현금을 최대한 아끼면서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립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1년 최고점에서 투자를 받은 기업 중 상당수가 여전히 당시 밸류에이션을 유지하는 것처럼 장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질 가치는 크게 떨어졌지만, 공식적으로 가치를 재조정하는 '청산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계적 기록과 시장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대로 굳어진 상태입니다.

기다림이 전략인가, 방어인가

이 현상을 보는 시각이 하나가 아닙니다. 벤처 투자자 중 일부는 "좀비가 아니라 인내"라고 부릅니다.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낸 사례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8~2009년 금융위기를 통과한 에어비앤비가 그쪽 논거로 자주 등장합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투자 경험을 직접 들어보면, 이들 대다수가 포트폴리오 기업에 "지금 시장이 어렵더라도 살아남으면 기회가 온다"고 조언합니다. 1%의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이 이 업의 논리이고, 그 1%를 찾으려면 나머지 기업들이 어떻게든 존속해줘야 한다는 논거입니다. 끈질기게 있는 것 자체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살아남는 것과 좀비화는 다릅니다. 전자는 사업 모델을 다듬으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고, 후자는 손을 쓸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자원만 소모하는 것입니다. 제자리에 묶인 기업들이 계속 존재하면 투자자 자금이 함께 묶이고, 그 자금이 더 나은 기업에 배분되지 못합니다. 펀드 전체의 수익률을 갉아먹고, 내부수익률(IRR) 계산을 왜곡합니다. 미국 VC 업계에서는 포트폴리오 기업의 20~30%가 이런 회색 지대에 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더 깊은 문제는 높은 밸류에이션 숫자가 내부 인센티브를 틀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창업자는 다운라운드를 피하기 위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며 라운드를 억지로 닫거나, 수익보다 성장 지표를 부풀리는 방향으로 경영을 기울이게 됩니다. 숫자가 목적이 되는 순간, 사업의 방향도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규모가 달라도 패턴은 같습니다

좀비 유니콘 이야기는 수천억 원 규모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패턴은 규모와 무관하게 반복됩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잘 될 때 잡힌 지표가 기준선이 됩니다. 월 매출, SNS 팔로어 수, 계약 단가 같은 숫자가 판단의 척도가 되면, 현실이 바뀌어도 그 숫자에 맞춰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예전엔 이만큼 됐으니 언젠가 돌아온다"는 기대가 자원을 소모하는 구조입니다. 유니콘의 좀비화와 형태가 닮았습니다.

오래된 서비스, 반응 없는 상품, 작동하지 않는 채널을 접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그것을 시작했을 때의 기대치, 투입한 노력, 주변의 기대감이 사람을 붙잡습니다. 접는 것은 실패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가장 낮은 전환 비용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을 '매몰비용 착각이  작동하는 자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문제 있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인력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과정이 반복되면, 사업 자체가 아니라 아끼는 기술만 쌓입니다. 이것이 인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의 지속은 인내가 아닙니다.

한 번쯤 짚어볼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운영 중인 서비스나 상품 중에 "언젠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유지하는 것이 있는지입니다. 그 기대의 근거가 지금의 데이터인지, 아니면 처음 잘 됐을 때의 기억인지입니다.


좀비 유니콘 이야기가 불편한 것은 그 기업들이 나쁜 의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시절의 낙관, 무리하지 않으려는 본능,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쌓여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그 불편함을 자기 사업의 어떤 숫자, 어떤 서비스, 어떤 기대에 대입해볼 수 있다면, 이 이야기는 실리콘밸리 밖에서도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