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허브가 2023년 공개한 연구에서 Copilot을 사용한 개발자들은 동일한 과제를 55% 빠르게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시니어 엔지니어 채용 수요는 줄지 않았습니다. 생산성이 올랐으면 같은 인원이 더 많은 일을 해내니 채용이 줄어야 한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그 논리가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 역설이 지금 소프트웨어를 넘어 물리 시스템을 다루는 엔지니어링 분야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AI가 반복 작업을 흡수한 자리에서 생기는 공백

에이전틱 AI는 코드 자동완성 도구와 결이 다릅니다. 지시 하나에 여러 파일을 생성하고, 테스트를 실행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흐름을 스스로 이어갑니다. 사람은 결과물을 확인하고 다음 지시를 내리는 역할로 이동합니다. 2024년 하반기부터 스타트업 개발팀 사이에서 이 방식이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소프트웨어 경계를 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설계, 제조 공정, 제어 시스템처럼 현실 세계와 맞닿은 영역에서도 AI가 시뮬레이션 초안을 뽑고, 반복 계산을 처리하고, 기술 문서를 작성합니다. 에이전틱 AI가 화면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고 물리적 결과를 낳는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프트웨어에서 AI가 오류 코드를 냈을 때, 대부분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버그를 찾고 수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물리 시스템에 AI 결과물을 검증 없이 적용했을 때는 다릅니다. 구조물이 예상과 다른 응력을 받거나, 제어 로직이 잘못된 순간에 작동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결과는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AI 결과물을 검증하는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생산성 도구가 확산될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

"AI가 엔지니어를 대체한다"는 주장은 에이전틱 AI 논의에서 꾸준히 등장합니다. 반복 작업에 집중해 온 포지션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어떤 업무 유형은 자동화 도구의 보급과 함께 수요가 줄어들었습니다. 이 방향의 우려를 형식적 반론으로 넘겨서는 안 됩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생산성 도구가 확산된 이후의 흐름을 보면 다른 양상도 있습니다. CAD가 설계 현장에 들어왔을 때 설계 엔지니어 전체 수요는 줄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그리던 도면 작업이 사라졌지만, 더 복잡한 구조를 더 빠르게 설계할 수 있게 되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늘어났습니다. 스프레드시트가 회계 반복 작업을 흡수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속도가 빨라지면 가능해지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 범위를 다루는 사람이 필요해지는 패턴입니다.

에이전틱 AI에서도 이 구도가 나타납니다. AI가 초안을 빠르게 쏟아낼수록 "이 초안이 맞는가"를 판단하는 사람이 생산 과정에서 가장 좁은 목에 위치합니다. AI가 틀린 방향으로 빠르게 달릴수록 피해도 빠르게 커집니다. 검증 능력을 가진 사람의 가치가 AI의 속도에 비례해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깃허브 연구에서 55%의 생산성 향상이 시니어 수요를 줄이지 않은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이 구도가 엔지니어링 분야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

에이전틱 AI의 확산은 소프트웨어와 엔지니어링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AI 도구를 들여온 어떤 조직에서도 비슷한 역학이 작동합니다.

마케터가 AI로 카피 초안을 50개 만들었을 때, 그 중 어느 것이 실제 고객에게 닿을지 판단하는 안목이 생산 과정에서 좁은 목이 됩니다. 콘텐츠 디렉터가 AI로 기사 구조를 잡았을 때, 그 구조가 독자 맥락에서 실제로 작동하는지 아는 능력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AI가 계약서 초안을 냈을 때, 우리 상황에 맞는지 가려내는 경험이 그 역할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AI 이전에는 반복 작업을 통해 패턴을 몸에 익히고, 그 경험이 쌓여 판단력이 됐습니다. 빠른 완성본을 계속 받아 쓰는 방식은 편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눈 없이는, AI가 낸 오류를 잡아내는 자리에서 스스로 빠지게 됩니다. 특히 경험이 얕은 실무자에게 이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를 의식한 조직에서는 AI 결과물을 검토하고 피드백을 주는 과정 자체를 학습의 장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AI가 반복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검토와 수정 작업을 통해 판단력을 기르는 루틴을 만드는 방향입니다. 업무 노하우가 쌓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인식이,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지금 실무에서 살펴봐야 할 것들

에이전틱 AI를 실무에 들인 사람이라면, 몇 가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AI 결과물을 검증하는 루틴이 있습니까. AI가 낸 결과를 그대로 쓰는 흐름과, 한 번 검토한 뒤 쓰는 흐름을 구분해야 합니다. 특히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과 맞닿은 작업에서 검증 없이 진행하는 관행이 쌓이지 않도록, 기준을 미리 세워 두는 것이 낫습니다.

내 분야에서 AI가 자주 빠뜨리거나 틀리는 부분을 알고 있습니까. AI는 전체 확률 분포에서 그럴듯한 답을 냅니다. 해당 분야의 예외와 엣지 케이스는 그 분야 경험자만 알아봅니다. "내 업무에서 AI가 자주 놓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리해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검증 능력의 구체적인 형태입니다.

AI 도구를 쓰면서 판단 근육을 키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쓰지 않고 있습니까. 도구가 가져온 속도가 판단을 쓰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일정 주기로 AI 없이 작업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편리함이 능력을 대신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루틴입니다.

에이전틱 AI가 작업 속도를 계속 높일수록, 실무자에게 남는 경쟁력의 형태가 바뀝니다.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은 도구가 대신합니다. AI가 낸 결과물이 맞는지 틀렸는지 알아보는 감각은 도구가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그 감각을 의식적으로 기르는 것이, AI 도구를 쓰면서도 쓸모 있는 실무자로 남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