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쌓아두기만 하고, 일은 사람끼리만 했습니다." 6월 25일, 서울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을 채운 약 1,000명이 이 문장을 들었습니다. 발언자는 이학준 마드라스체크 대표였습니다. 그가 이끄는 플로우(Flow)는 국내 수천 개 중소·중견기업이 쓰는 협업 플랫폼입니다. 10년 가까이 조직의 회의록과 업무 일정, 프로젝트 상태를 쌓아온 플랫폼의 대표가 직접 꺼낸 진단이었기에, 청중 사이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 진단 뒤에 구체적인 방향 전환이 이어졌습니다. 마드라스체크는 이날 'AX Festa 2026' 행사에서 플로우를 'AI 워크에이전트(Work Agent)'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OpenAI ChatGPT, 구글 제미나이, 앤트로픽 클로드 같은 외부 AI 모델을 연동하는 한편, 자체 AI 엔진 '리패턴(Repattern) AI'를 개발해 플로우 안에서 업무 흐름을 자동으로 재구성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협업툴이 데이터를 보관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구성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공표였습니다.

협업툴이 '저장소'에서 벗어나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슬랙이 2013년에 출시됐을 때 협업툴의 설계 철학은 명확했습니다. 이메일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채널 기반으로 이동시키고, 파일과 메시지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노션, 아사나, 지라, 플로우 같은 도구들이 이 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프로젝트 구조화, 일정 공유, 업무 배분 기능이 정교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도구들에 쌓인 수년 치 데이터를 분석해서 팀에게 다음 행동을 제안하는 역할은 언제나 팀장이나 기획자가 맡았습니다. 협업툴은 데이터를 읽을 수 없었고, 사람이 데이터를 보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2024년부터 이 구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노션은 AI 기능을 정규 플랜에 포함시키면서 문서 초안 작성과 데이터베이스 자동 채움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Teams와 Office 전반에 Copilot을 통합해 회의 내용을 자동 요약하고 액션 아이템을 생성하도록 했습니다. 아틀라시안은 Jira와 Confluence에 자율 에이전트 기반 서비스 'Rovo'를 도입해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스스로 추적하고 병목을 감지하는 기능을 순차 배포하고 있습니다. 각 도구가 '저장'에서 '처리'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전환이 2024~2025년 사이 가속된 이유 중 하나는 대형 언어 모델의 맥락 처리 능력이 실용 수준에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긴 문서를 요약하거나, 지난 몇 주간의 논의를 정리하거나, 반복 패턴을 찾는 작업에서 AI의 처리 속도와 정확도가 실무에 투입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협업툴 회사들이 제품 방향을 바꿀 근거가 생겼습니다. 마드라스체크의 이번 발표는 그 전환이 국내 협업 시장에서도 공식화되는 장면이었습니다.

AI 협업 도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팀의 우려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협업툴 안에서 업무를 처리한다는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각도 분명합니다. 기술적 신뢰 문제가 먼저입니다. 현재 AI 에이전트는 맥락 오해에서 비롯된 오류를 빈번하게 일으킵니다. 한국 기업 환경에서는 구두 지시와 메시지 지시가 혼재하고, 핵심 결정이 공식 채널이 아닌 메신저 메모나 구두 회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텍스트 기록만으로 이 맥락을 AI가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실무자들 사이에서 AI가 회의록을 요약했는데 결정 사항을 잘못 기재해 경영진 보고에서 수정을 반복한 경험이 공유됩니다. 도구를 신뢰하지 못하면 활용도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조직 문화적 반발도 구체적으로 존재합니다. AI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이 직원들에게 감시 또는 대체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Teams에 개인 생산성 추적 기능을 도입하려 했을 때 직원 커뮤니티와 유럽 지역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로 출시 방식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AI 도구가 팀 안으로 들어올 때, 도입 방식이 투명하지 않으면 신뢰보다 불안이 먼저 확산됩니다. 이 점에서, 도구의 기능보다 도입 절차를 먼저 설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데이터 보안 측면에서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AI 워크에이전트는 조직 내 업무 데이터를 처리 근거로 삼습니다. 외부 AI 모델을 협업툴에 연동할 경우, 어떤 데이터가 어떤 경로로 처리되는지 파악하지 않은 채 편의성만 취하면 이후 보안 감사에서 문제가 됩니다. 국내에서도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다가 내부 문서 유출 가능성을 우려해 도입을 중단한 팀 사례가 있습니다. 기술이 빠르게 출시되더라도 도입 전 정책 점검을 생략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쓰는 협업툴의 AI는 이미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기업용 플랫폼의 방향 전환 발표를 보면서 1인 사업자나 소규모 팀은 먼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사용 중인 도구가 이미 그 초기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션 AI는 무료 플랜에서도 문서 요약, 번역, 초안 작성을 제공합니다. 슬랙은 2024년부터 채널 대화 요약과 질의응답 기능을 유료 플랜에 포함시켰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이 채널에서 결정된 사항을 정리해줘"라는 입력 하나로 정리 문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플로우는 이번 발표에서 리패턴 AI 기반 반복 업무 자동화 기능을 올해 하반기 순차 출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능들을 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습관입니다. 지금 사용 중인 협업툴의 설정 메뉴에서 AI 관련 탭을 한 번이라도 확인해본 적이 없는 팀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구독 플랜에는 AI 기능이 이미 포함되어 있지만, 별도 활성화 절차가 있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점검 하나가 가장 빠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반복 업무 목록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주간 업무 보고 초안, 회의 후 액션 아이템 정리, 외부 미팅 결과 요약 같은 작업은 AI 워크플로와 결합했을 때 주 2~4시간을 돌려받을 수 있는 항목들입니다. AI가 초안을 생성하고 사람이 검토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때, 여기서 빠뜨리기 쉬운 것이 검토 절차를 먼저 설계하는 일입니다. AI 도구를 처음 도입한 팀에서 가장 흔히 겪는 실패는 자동화된 산출물을 완성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AI가 작성한 보고 초안은 출발점입니다. 생성과 판단 사이에서 사람의 역할이 달라지는 것이지,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 바뀔 때마다, 사람이 집중해야 할 영역이 달라졌습니다. 자동화가 반복 작업을 흡수할수록 판단·설득·설계·관계에 더 깊이 들어가야 했고, 여러 연구가 이 방향을 수십 년에 걸쳐 반복해서 확인했습니다. AI 도구가 협업툴 안으로 들어오는 지금도 이 흐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도구와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직접 맡을지 먼저 정해두지 않으면, 협업툴 AI는 10년 전의 데이터처럼 다시 쌓이기만 하다 끝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