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서 1인 기획사를 운영하는 최 씨는 매주 월요일 오전을 같은 일에 씁니다. 지난주 들어온 문의 메일 여섯 통을 읽고, 각각의 맥락을 파악한 뒤, 사전 제안서 초안을 작성하는 데 보통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생성형 AI를 쓰기 시작하고 초안 작성 시간은 50분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 작업을 자신이 진행합니다. AI에게 물음을 던지고, 답을 받고, 다시 수정하는 방식으로요. AI를 쓰고 있지만, 조립과 판단은 온전히 그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생성형 AI를 쓰는 방식의 단면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새로운 전환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문서를 읽고 답을 주던 AI는 이제 첫 번째 단계가 됐습니다

생성형 AI가 출시 초기에 한 일은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사람이 질문을 입력하면 답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문서를 주면 요약하고,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면 초안을 건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람이 판단하고 지시하면 AI가 그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구조였습니다. AI 솔루션 업계는 이 단계를 'Gen AI 1.0'으로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생성형 AI 솔루션 기업 제논은 지난 7월 세미나에서 다음 단계를 'Gen AI 2.0'으로 정리했습니다. 문서를 읽고 답을 내놓는 방식을 넘어,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시스템 위에서 AI가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고 검증까지 완결하는 방향입니다. 기술 용어로는 '에이전틱 AI(Agentic AI)'라고 부릅니다.

에이전틱 AI가 처리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CRM 시스템에서 고객 데이터를 가져오고, 지난 3개월 거래 이력을 분석하고, 이탈 위험이 높은 고객 목록을 작성한 뒤, 각 고객에게 보낼 메일 초안을 만들어 발송 대기 상태로 넘기는 것까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처리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개입하는 시점은 최종 검토와 발송 승인뿐입니다.

'질문에 답한다'와 '업무를 처리한다'는 AI 입장에서 다른 역할을 요구합니다. 전자는 텍스트를 생성하는 일이고, 후자는 외부 시스템에 접근하고, 중간 결과를 스스로 점검하고, 여러 단계의 작업을 순서대로 처리하는 일입니다.

'AI가 스스로 일한다'는 표현을 그대로 믿으면 생기는 일

그러나 이 표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오해가 생깁니다. 현시점에서 에이전틱 AI가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범위와 조건이 뚜렷하게 한정됩니다.

반복적인 데이터 정리, 정해진 형식의 보고서 초안 작성, 사전에 설정된 기준에 따른 문서 분류 같은 작업에서는 실용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반면 예외 상황이 발생하거나 맥락 판단이 필요한 지점에서는 여전히 오류가 많습니다. 다단계 자율 작업에서는 AI 에이전트가 중간에 방향을 잃거나 오류를 교정하지 못한 채 계속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 질의응답에 비해 오류의 영향 범위가 크다는 점도 현재의 한계입니다.

실제 현업에서는 AI 에이전트가 중간 판단을 잘못 내려 작업 전체를 되돌려야 하는 경우가 반복됩니다. "AI가 알아서 한다"는 기대로 자동화를 도입했다가 오히려 검토 시간이 늘어난 사례도 있습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 하나하나를 사람이 매번 확인해야 한다면, 그것이 어느 의미에서의 자동화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Gen AI 2.0'이라는 용어 자체가 솔루션 기업의 세미나에서 나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가에 대한 사실 진술인지, 아직은 방향성을 가리키는 표현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전환이 실제로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가는 지금 시점에서 아직 검증 중입니다.

1인 사업자가 이 전환에서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이유

그럼에도 이 방향에는 1인 사업자가 지나치기 아까운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AI의 역할이 '답 생성'에서 '과정 처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 방식이라면 "이 계약서 요약해줘"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계약서에서 의무 조항만 뽑아 체크리스트 형태로 만들고, 이행 기한이 있는 항목에는 날짜를 표시한 뒤, 이번 달 안에 처리해야 할 것은 별도로 정리해줘"라는 방식으로 작업 단위를 통째로 넘길 수 있습니다. 결과물을 받아 내가 처리하는 것과, 처리까지 AI가 마친 상태로 받는 것의 차이입니다.

이 차이를 실감하려면 자신의 업무를 어느 것이 '판단'에 속하고 어느 것이 '처리'에 속하는지 나눠봐야 합니다. 고객 미팅에서 무슨 제안을 할지는 판단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미팅 전에 고객사 최근 뉴스를 수집하고, 지난 이메일에서 주요 이슈를 정리하고, 이전 제안서의 수정 이력을 확인하는 일은 처리의 영역입니다. AI가 이 과정을 먼저 완결해 놓은 상태에서 판단에 집중한다면, 같은 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이 관점은 경영 현장의 오래된 명제와 연결됩니다. 어떤 일을 누가 처리하고, 어느 지점에서 의사결정권자에게 넘기는가를 명확히 해야 조직이 굴러간다는 것은 실무 경영 교육에서 꾸준히 다뤄온 원칙입니다. 위임의 기준을 세우고, 처리 흐름을 설계하고, 결정 지점을 사전에 정의하는 것이 그 작동 방식입니다. 지금은 그 위임의 대상이 사람에서 AI로 확장되는 시점에 있습니다. 1인 사업자에게는 조직 없이도 이 위임 구조를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출발점이 있습니다. 이번 주 자신이 반복한 업무 목록을 종이에 적어보는 것입니다. 메일 응답, 자료 수집, 회의록 정리, 초안 작성, 숫자 정리. 그 중에서 정해진 형식이 있거나 매번 비슷한 판단이 반복되는 것이 있다면 AI 에이전트에게 넘길 후보입니다. 기준이 명확할수록, 처리 방식이 반복될수록 자동화 성공률은 올라갑니다.

대기업보다 1인 사업자와 소규모 팀이 이 전환에서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 내부에서는 레거시 시스템, 보안 정책, 부서 간 승인 구조가 자동화 도입 속도를 늦춥니다. 스스로 도구를 고르고 연결할 수 있는 1인 사업자는 오늘 결정하면 내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설계 비용을 수반합니다. AI에게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넘길지를 명확히 정의하는 시간이 처음에는 필요합니다. 이 과정이 사실은 자신이 그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언어로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한 번 정의한 기준은 AI에게도 쓰이고, 다음에 같은 일을 맡길 사람에게도 쓰입니다.

질문을 잘 만드는 능력과 업무를 잘 넘기는 능력은 서로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Gen AI 2.0이 이 두 번째 능력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