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트위치 최고제품책임자 마이크 민턴은 라이브스트림 Q&A에서 이례적인 말을 꺼냈습니다. 스트리머들의 방송을 아마존 AI 학습에 사용하겠다는 정책에 반발이 쏟아지던 자리였습니다. "옵트인 방식이었다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을 겁니다. 솔직히 그게 답입니다."
그 발언을 들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내용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솔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이 알고 있었다면 동의하지 않았을 조건을, 회사가 의도적으로 기본값으로 설계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인정한 셈이었습니다.
이 고백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옵트아웃 방식의 기본 동의 설계는 트위치만 쓰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아 보이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옵트인과 옵트아웃은 표면적으로 동등해 보입니다. 둘 다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원하면 동의하고, 원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있습니다. 어느 방식에서든 최종 결과는 사용자가 결정합니다.
실제 결과는 다릅니다.
행동경제학자 에릭 존슨과 대니얼 골드스타인이 2003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는 이 차이를 유럽 장기기증 데이터로 보여줬습니다. 기증에 명시적으로 동의해야 기증자가 되는 나라들 — 독일 12%, 덴마크 4%, 영국 17% — 과 기증을 거부한다고 적극적으로 신청해야 기증을 피할 수 있는 나라들 — 오스트리아 99.98%, 벨기에 98%, 프랑스 99.91% — 사이의 격차는 캠페인이나 인식 차이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같은 가치 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기본값이 달라졌을 때 다른 방향으로 쌓입니다.
이 격차의 원인으로 행동경제학자들이 지목하는 것은 현상 유지 편향입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상태를 디폴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명시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행동에는 비용이 듭니다. 시간, 주의, 불편함입니다. 그 비용이 아무리 작아도 결정을 미루게 하고, 미룬 사람은 기본값 쪽에 남습니다.
트위치의 새 정책은 이 메커니즘을 활용합니다. 기본값을 '동의'로 설정하고, 원하지 않는 스트리머가 직접 설정 메뉴로 들어가 거부를 신청하게 했습니다. 민턴의 발언은 회사가 이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두 방식이 완전히 갈라지는 지점
옵트인은 플랫폼에 행동 비용을 놓습니다. 사용자에게 접근해 설명하고,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동의를 받지 못하면 데이터를 쓸 수 없습니다.
옵트아웃은 사용자에게 행동 비용을 놓습니다. 거부 의사를 직접 행사해야 합니다. 설정을 찾고, 해당 항목을 확인하고, 변경을 저장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단계가 불분명하거나 시간이 걸리면 사람들은 나중으로 미룹니다. 미룬 사람은 기본값 상태에 머뭅니다.
두 방식의 우열이 뒤집히는 조건이 있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이 플랫폼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면, 옵트아웃 설계는 강제력을 잃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조건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플랫폼을 바꾸는 것이고, 그 선택지가 실질적으로 열려 있다면 플랫폼은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가 소음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스트리머가 그 선택지를 실제로 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터가 떠나기 어려운 이유
트위치 스트리머에게 플랫폼 이탈은 공간을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팔로워 수, 구독자 관계, 채널 포인트 시스템, 광고 수익, 협찬 계약이 트위치 플랫폼 위에 쌓여 있습니다. 유튜브로 방향을 틀거나 킥으로 옮겨도 이 자산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새 플랫폼에서 처음부터 쌓아야 합니다.
이 이전 비용이 협상력을 플랫폼 쪽으로 기울입니다. 조건이 달라져도 크리에이터는 잃을 것이 많아 이탈을 미룹니다. 플랫폼은 이를 전제로 정책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경영 전략 분석에서 이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이 '전환 비용'과 '잠금 효과'입니다. 소비자나 파트너가 관계를 끊을 때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충분히 크면, 제공자는 조건을 점진적으로 바꿔도 관계가 유지됩니다. 관계의 역사가 쌓일수록 전환 비용은 높아지고, 초기 조건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이후 변경된 조건까지 묵시적으로 수용하는 근거로 쓰입니다.
트위치의 이번 사례는 이 논리가 AI 시대에 어떤 형태로 재현되는지 보여줍니다. 스트리머들은 방송 초기에 약관에 동의했습니다. 그 약관이 몇 년 뒤 어떻게 해석될지, 기술 환경이 바뀌었을 때 같은 문구가 어떤 내용을 가리키게 될지는 당시로서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크리에이터의 콘텐츠가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된 시점
스트리머가 방송을 켤 때 그 영상은 원래 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시청자의 화면입니다.
이용약관에는 항상 '서비스 개선을 위한 데이터 활용'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에이터에게 그 문구는 버그 수정이나 추천 알고리즘 정도로 읽혔습니다. 기술적으로 틀린 독해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서비스 개선'이 실제로 그 정도 범위였기 때문입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 독해가 달라졌습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을 훈련하려면 다양한 언어, 어조, 맥락이 담긴 자연어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스트리머들이 수년간 방송에서 쌓아온 영상 — 실시간 반응, 즉흥적 해설, 감정적 표현, 특정 게임이나 주제에 대한 심층 대화 — 은 이 기준에 정확히 맞는 학습 재료입니다. '서비스 개선'이라는 문구가 실제로 가리키는 내용이 기술 환경과 함께 조용히 달라진 것입니다.
크리에이터들은 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기존 약관 아래 머물렀습니다. 8월 정책 발표 이후에야 같은 문구가 이제 다른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비슷한 구조는 트위치에만 있지 않습니다. 구글은 2023년 7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개정해 공개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메타는 유럽 사용자 게시물로 라마 모델을 훈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법원 판결로 중단됐고, 이후 옵트아웃 신청을 받는 형태로 방식을 조정했습니다. 한국에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콘텐츠를 올리는 크리에이터들은 이 정책의 적용 범위 안에 있습니다.
콘텐츠를 올리는 행위가 시청자와 소통하는 것인지, 동시에 AI 학습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인지 — 이 두 가지는 오랫동안 구별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민턴의 발언은 그 구별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플랫폼 스스로 인정한 순간입니다.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트위치는 설정 → 개인정보 메뉴에서 AI 학습 데이터 활용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스튜디오와 메타 계정 설정에도 AI 활용 관련 항목이 새로 추가됐거나 추가되는 중입니다. 플랫폼이 이메일로 보내는 약관 변경 알림에서 '데이터', 'AI', '학습', '훈련'이 포함된 항목만 골라 읽는 습관이면 충분합니다.
기본값이 어느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설정 변경 한 번의 문제보다 클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