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가 연초부터 수천 명씩 인력을 내보내는 동안, 실리콘밸리 개발자 커뮤니티에는 "AI에 밀려 면접 자체를 못 보고 있다"는 토로가 넘쳤습니다. AI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체한다는 주장이 거의 기정사실처럼 유통됐고, 테크 기업 채용 포지션 수가 전년 대비 크게 줄었다는 통계도 잇달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벤처캐피털 SignalFire가 수만 개 기업의 실제 채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그 서사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해고 공포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도 신규 채용에서 엔지니어링 직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대중이 받아들인 서사와 실제 데이터가 이처럼 어긋날 때, 우리가 AI 시대 직업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엔지니어링 이야기가 아닌, 어떤 업무를 하느냐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해고 기사 뒤에 숨어 있던 채용 증가
SignalFire의 분석에 따르면, AI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는 시기에도 기술 기업들은 엔지니어를 지속적으로 채용했습니다. 전체 신규 채용 중 엔지니어링 직군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아졌습니다. 특히 AI 시스템을 직접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개발자, 머신러닝 엔지니어, 인프라 설계자에 대한 수요가 두드러진 반면, 루틴 업무를 주로 다루는 직군에서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그림이 나타난 배경에는 예측 가능한 논리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AI 시스템을 도입할수록 그것을 구축하고 유지하고 개선하는 사람이 함께 필요해집니다. 생산 현장에 자동화 설비가 들어오면 설비 엔지니어의 수요가 함께 늘어나는 논리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합니다. AI가 코드를 생성한다고 해서 AI를 만들고 관리하는 코드의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AI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책임지는 엔지니어의 역할은 더 전문화됩니다.
해고 소식이 집중된 직군을 살펴보면 다른 패턴이 보입니다. 채용 및 인사 기능의 일부, 반복성 높은 마케팅 운영, 콘텐츠 양산형 직무, 고객 지원 초급 인력에서 감원이 집중됐습니다. AI가 "직업을 없앤다"는 큰 이야기보다, AI가 특정 종류의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동시에 다른 종류의 업무를 새로 만들어낸다는 쪽에 가까운 그림입니다. 직군의 이름이 아니라 업무의 성격이 분기점이 됩니다.
그래도 이 데이터를 낙관으로 읽기 어려운 이유
물론 이 데이터를 곧장 안심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SignalFire의 표본이 벤처 투자를 받은 테크 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부터 한계입니다. 중견 제조업체, 유통업체, 서비스업처럼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에서 엔지니어링 직군이 동일한 패턴을 보이는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빅테크의 채용 흐름이 한국 중소기업 시장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서울 소재 IT 기업의 채용 동향이 지방 중소 제조업의 인력 수요와 같을 리도 없습니다.
더 핵심적인 반론은 채용이 늘었다는 사실의 내부에 있습니다. 수요가 늘어난 엔지니어는 AI를 '사용하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AI를 '구축하고 평가하는' 엔지니어에 훨씬 가깝습니다. AI 코드 생성 도구가 확산되면서 단순 반복 코딩을 담당하던 초급 개발자의 역할 일부는 줄어드는 동시에, AI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고 감독할 수 있는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는 집중되는 양극화가 같은 직군 안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링 직군이 살아남았다는 것과, 그 직군에 속한 모든 사람이 안전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같은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기술직 바깥의 직군에서는 이 데이터가 위로가 되기 어렵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법무 보조, 초급 콘텐츠 기획, 영업 사무 지원처럼 AI가 자동화하기 용이한 루틴 업무를 주로 맡는 직군은 채용 경쟁에서 밀리는 신호가 여러 곳에서 포착됩니다. SignalFire의 데이터는 엔지니어링 직군의 상황을 설명하지, 모든 직군의 낙관론을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직종의 이름보다 업무의 층위
SignalFire의 데이터를 한국 1인 사업자나 프리랜서의 맥락에서 읽으면, 직종 자체보다 업무 안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가 핵심으로 떠오릅니다.
엔지니어링 직군이 살아남은 이유를 파고들면 한 가지 공통점에 닿습니다. 채용된 엔지니어들의 일은 대부분 불확실한 문제를 분해하고, AI의 출력물을 검증하고, 여러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하나의 시스템 안에 담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것을 평가하고 수정하고 맥락에 맞게 조율하는 역할이었습니다. AI라는 도구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 도구의 결과를 심판하는 사람이 살아남은 것입니다.
이 관찰을 엔지니어가 아닌 기획자, 콘텐츠 디렉터, 1인 창업자에게 옮겨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요. AI가 지금 잘 하지 못하는 일의 목록을 떠올려 보면 방향이 보입니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클라이언트와 신뢰를 만들어가는 일, 수치나 데이터가 뒷받침하지 않는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일, 오랜 관계 안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된 기대치를 관리하는 일, 상대방이 아직 말하지 않은 욕구를 먼저 읽어내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주도하는 영역에 가깝습니다.
2030년 이후 일터에 대한 여러 전망들이 반복해서 지목하는 역량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기술 도구를 조작하는 능력보다, 그 도구가 만들어낸 결과를 맥락 안에서 판단하는 능력. 효율적으로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능력보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만들어가는 능력. 정해진 절차를 빠르게 따르는 능력보다, 낯선 상황에서 학습 속도를 유지하는 능력. 이것들은 카페를 운영하든, 콘텐츠를 기획하든, 소규모 컨설팅을 진행하든 직종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역량입니다.
저는 이 역량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I 이전에도 오래 일한 사람들이 가졌던 강점입니다. AI 이후 그 강점은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한 차별점이 됐습니다.
지금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점검
1인 사업자 입장에서 이 데이터에서 뽑아낼 수 있는 질문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 가운데 AI가 이미 비슷한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는 루틴 업무가 얼마나 되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보고서 초안 작성, 반복적인 이미지 편집, 정형화된 고객 응대, 표준적인 자료 정리 같은 업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 시간을 어디에 재배치할지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AI가 이 업무를 어느 수준에서 대신할 수 있는지를 먼저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기준점이 됩니다.
AI 도구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지보다, AI 출력물을 얼마나 날카롭게 검토할 수 있는지가 더 희소한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나 분석 결과를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과, 그 안에서 오류나 편향을 잡아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다듬는 사람 사이의 거리는 시장에서 이미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구 사용 능력보다 도구 검토 능력이 더 값어치 있는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신뢰를 어떻게 쌓아가고 있는지도 돌아볼 만합니다. 오래 거래한 클라이언트, 반복 의뢰를 받는 관계, 추천으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는 AI가 단기간에 재현하기 어려운 자산입니다. 기술이 평준화되고 AI 도구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이 관계의 무게는 오히려 더해집니다. 비슷한 도구를 쓰는 경쟁자 사이에서 차별점은 도구가 아니라 관계가 됩니다.
SignalFire 데이터가 보여준 것은 특정 직군의 생존이지만, 그 생존의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직종의 이름보다 업무 안에서 사람이 실제로 하는 일의 성격이 더 중요하다는 관찰에 닿습니다. 해고 통계를 보고 "엔지니어는 안전하다" 또는 "내 직업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보다, 지금 내가 하는 일 가운데 AI에게 맡길 수 있는 부분과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가려내는 작업이 직업 전략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