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열두 명 규모의 어느 콘텐츠 에이전시가 2024년 들어 신입 작가를 뽑지 않기로 했습니다. AI 초안 도구를 쓸 줄 아는 3년 경력자 한 명이 초안 작업만 놓고 보면 신입 셋보다 빠르고, 교육 기간도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표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 년 뒤, 이 에이전시는 4년 경력 작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4년 경력자를 찾기 시작한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초안은 도구가 만들어 주지만, 그 초안이 내보낼 만한 수준인지 판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 몫입니다. 문제는 그 판정 능력이 대개 신입 시절의 초안 업무에서 길러져 왔다는 데 있습니다. 훈련 단계를 걷어내면 당장의 산출물은 그대로인데, 몇 년 뒤에 올 경력자가 사라집니다. AI가 신입 업무를 가져간 뒤 5년 경력은 어디서 만들어지는지 묻는 이번 주 대표 글의 물음이 여기서 나옵니다. 같은 공백은 경력자들로 이루어진 조직 안에서도 생깁니다. 회의 시작 20분 전, 팀장이 AI 도구로 정리한 월간 실적 보고서를 훑었습니다. 수치 표가 깔끔하고 증감률도 빠짐없이 들어가 있어, 별도 검토 없이 임원 회의에 올렸습니다. AI 보고서를 결정에 올리기 전에 확인하는 순서를 따로 정해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겉이 완성돼 보이는 산출물일수록 판정 단계가 생략되기 쉽고, 생략된 판정은 검토 능력을 단련할 기회도 함께 없앱니다. 판정이 사라지는 과정은 갈등 없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콘텐츠 팀 세 명이 다음 달 주제 회의를 십오 분 만에 끝냈습니다. 예전이라면 한 시간은 걸렸을 논쟁이었습니다. 팀장은 처음에 팀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세 사람 모두 회의 전에 같은 AI 추천 목록을 보고 들어와 있었습니다. 전문가가 AI 추천 도구에 동의하기 시작할 때 줄어드는 것은 회의 시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판단을 견주는 논쟁 그 자체입니다. 조직 밖의 연습에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창업자가 30분 동안 사업 계획을 설명했고, 경청한 멘토는 흐름이 좋았다는 평과 숫자 부분을 다듬으라는 조언을 남겼습니다. 연습 피칭 한 회가 그렇게 완료됐습니다. 연습 피칭에서 가장 드문 것이 불편한 질문이라는 관찰대로라면, 이 창업자는 연습을 마쳤을 뿐 검증은 받지 못한 셈입니다. 판정 능력이 길러지는 과정이 줄어든 결과는 결과물에서 먼저 나타납니다. 같은 AI 구독을 쓰는데 어떤 사람은 기획서 초안을 40분 만에 마무리하고, 어떤 사람은 세 시간을 써도 어긋난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같은 AI 도구에서 결과물 격차가 어디서 생기는지 추적해 보면, 접근 권한이 같아진 뒤에 남는 차이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고칠지 가르는 안목이었습니다. 신입 업무와 한 시간짜리 논쟁, 따가운 질문처럼 판정 능력을 길러 주던 과정은 이제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곁에 신입도 논쟁 상대도 없는 1인 사업자·창업가·기획자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AI 산출물을 그대로 내보내기 전에, 틀렸을 법한 대목 한 군데를 직접 찾아보세요. 회의나 피칭에서는 불편한 질문을 한 개라도 청해 보세요. 초안이 값싸진 만큼, 그것을 판정해 본 이력이 다음 경력이 됩니다. 이어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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